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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환영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4. 25. 21:17

     

    쇠퇴기의 중세만큼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강조하고 감정을 부여한 시대는 달리 없었다. 그 시대에는 끊임없이 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는 호소가 메아리쳤다.

    중세 전시대에 걸쳐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 죽음에 대한 항구적인 생각을 새겨놓았다. 하지만 앞 시대의 신앙서들은 주로 이미 은퇴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차츰 탁발 수도회와 더불어 민중 설교가 확장되어갔고 그러자 삶을 비난하는 말들이 어두운 송가로서 지속적인 둔주곡의 모티프를 가지고 삶을 관류하며 높아져갔다. 중세 말기에 이르면 새로운 형태의 표현 형식이 설교가들의 설교에 더해지는데, 사회의 모든 계층 속에 파고든 목판화가 그것이었다.

     

     

    설교와 이미지, 이 두 표현 양식은 민중을 사로잡으면서, 죽음의 표현에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형식밖에는 부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죽음에 대한 옛 수도사들의 명상은 매우 원시적인 이미지 속에 압축되었다. 죽음과 관련된 매우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이 이미지는 단 하나의 요소, 곧 멸망과 덧없음이라는 개념을 길어내었다. 그만큼 조락기의 중세는 죽음을 이 유일한 면에서만 보았던 것 같다. 지상의 화려함이 노쇠해가는 것에 대한 이 영원한 한탄 속에서 세 가지 테마가 부각된다. "한 때 온 땅에 명성을 날렸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첫 테마를 이루는 질문이다. 두 번째로 인간의 아름다움이 해체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그 모티프를 이룬다. 마지막 테마는 죽음의 무도la danza macabra 라는 테마인데 이는 죽음이 모든 나이와 모든 조건에 걸쳐 모든 사람들을 꿀고가는 모습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뒤의 두 테마에 비해보면 첫 테마는 단지 하나의 가볍고도 애상적인 슬픔에 불과했다. 그것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진 매우 오래된 것이며 그리스의 이교주의에서 온 것이다...

     

    La danza macabra, XVI, 프레스코화

     

    인간의 아름다움과 영광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추억과 이름뿐. 하지만 이 생각의 멜랑코리만으로는 공포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리하여 그 시대는 사람들의 눈앞에 썩어가는 것의 구체적인 표현 곧 시체의 부패를 제시하게 된다. 

    중세의 고행자들은 재와 벌레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세상에 대한 경멸을 주제로 한 종교적인 글들은 시체의 썩음과 해체가 주는 공포를 즐겨 나열하였다. 그러나 작가들이 세세한 것들의 정묘함을 즐기게 된 것은 보다 나중의 일이며, 14 세기말경에 조형 예술들은 이 테마에 몰두하게 된다. 1400년경 조각과 회화는 이 주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사실주의적 표현 방식들을 획득하였고, 동시에 그 모티프는 사제문학에서 민중문학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16세기 직전까지도 무덤들은 벌거벗고 썩어가는 시체들의 혐오스러운 이미지들과 발과 주먹이 빳빳하게 굳고 입을 벌린 채 벌레들에 의해 창자가 뜯어먹히는 그림들로 장식되게 된다. 

    그리하여 상상력은, 인간의 타락이 지상에서 회개하고 꽃을 피우는 것을 상상하는 대신에 그 같은 잔혹한 공포로 만족해버린다. 죽음의 현세적인 면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경건한 것인가? 이는 차라리 과도한 관능성에 대한 반동이 아닐까? 그 시대를 휩쓴 삶에 대한 두려움, 즉 깨어진 환상과 실망의 감정이 아닐까? 이 모든 감정들이 죽음에 대한 표현 속에 드러나 있다. 

    삶에 대한 공포,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거부, 그것은 비탄과 고뇌가 거기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감정의 불교적 표현과 중세 기독교적 표현 사이에는 기이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늙는 것에 대한, 병과 죽음에 대한 동일한 두려움이며, 부패의 색상들이다...

    세상에 대한 경멸이라는 이 상투어구는 수많은 글에서, 특히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세상에 대한 경멸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의 글은 중세말경에야 크게 보급된 것으로 보이는데, 성 베드로의 보좌에 앉은 강력한 정략가요 그토록 많은 일들과 현세적 이해관계에 얽힌 그가 젊은 시절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장본인임을 생각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닌가? "여자는 음란과 악취 속에서 아이를 잉태하며 슬픔과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고, 번뇌와 노동으로 키우며, 탄식과 공포로 늙어간다" "그 누가 단 하루라도 완전한 기쁨을 누리며 즐겁게 보내는가. 적어도 단 한번의 눈길이나 소리나 충돌로 그를 화나게 함이 없이" 

    확실히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회의함이 없이, 단지 아름다움이 파괴되어 간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어한 물질주의 정신이 있다. 그리고 조형예술에서는 아니지만 적어도 문학속에서만은 사람들이 슬퍼한 것은 특별히 여성의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는 경건한 훈계와 젊음을 아낌없이 누리라는 세속적 권고가 서로 뒤섞이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죽음la morte이라는 인물은 여러 세기 전부터 조형 예술이나 문학적 표현 속에서 다양한 형태들을 덧입고 있었다. 그것은 땅에 엎드린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 위로 말을 말을 타고 지나가는 묵시록의 기사인가 하면 캄포 산토 드 피사 에서 볼 수 있듯이 박쥐날개를 지닌 악녀였다. 그것은 또 낫이나 활과 화살을 든 해골로서 가끔은 황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거나 황소나 암소를 타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Triumph of the Death / Buffalino Buffalmacco, 1336-1341, Campo Santo, Pisa

     

    14세기에 오면 '마카브로macabro' 혹은 처음 발음되었듯이 마카브레macabre란 이상한 단어가 등장한다. "나는 죽음의 춤을 추었다" 고 1376년 시인 장 르 페브르는 말할 것이다. 이론이 분분한 그 어원이 무엇이건, 그 단어는 고유명사임에 틀림없다. 'danza macara'라는 표현에서 중세 마지막 세기들의 죽음의 환영을 이 한마디 말로 특징지울 만큼 그렇게 특징적인 뉘앙스를 띤 형용사를 끌어내는 것은 보다 나중의 일이다. 

    죽음의 마카브로 개념은 마을 묘지의 묘비명들과 상징 속에서 그 최후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중세 말기에 한 시대 전체의 사고를 표현한다. 죽음의 표현에는 환각적이고 환상적인 새로운 요소, 즉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유령들의 영역에서 나온 하나의 전율이 뒤섞인다. 지배적인 종교적 사고가 이 요소를 모랄로 바꾸었고, 그것을 죽음의 상징으로 변형시켰지만, 그것은 또 이 표현의 유형적 성격이 만들어내는 공포의 암시를 기꺼이 사용하였다. 

    죽음의 무도란 개념의 둘레에는, 위협과 윤리적 설교에 적합한 몇몇 부대 개념들이 몰려 있었다. 우선권은 <세 명의 사자와 세 명의 생자 이야기>에 주어지는데, 그것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1280년 이전으로 되어 있다. 세 명의 젊은 귀족들이 돌연 무시무시한 세 사자들을 만난다. 사자들은 이들 젊은이들에게 자기들이 누렸던 과거의 찬란함을 을려주고, 또 지금은 살아 있는 세 사람이 조만간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테마는 그 가장 오래된 표현으로 캄포 산토 드 피사의 감동적인 벽화 속에  잘 보존되어 있다...

     

    <세 명의 사자와 세 명의 생자 이야기> 삽화

     

    단말마는 인간이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4가지 최후, 곧 죽음, 심판, 지옥 혹은 천국 중 첫째 가는 것이었다. 4 가지 최후의 테마에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우리는 인쇄술과 목판예술 덕택에 죽음의 무도로 널리 보급된 15세기의 창작물<죽음의 예술>을 보게 된다. 그것은 빈사 상태의 사람을 괴롭히는 악마의 5가지 유혹으로 종교적 진리들에 대한 회의와 자신의 죄로 인한 절망, 현세적 소유에의 집착과 자신의 고통으로 인한 절망, 현세적 소유에의 집착과 자신의 고통으로 인한 절망, 그리고 자기 덕행에의 교만이 그것이다. 각각의 유혹에 대해 각각의 한 천사가 악마의 계략을 물리치고 천사는 죽어가는 자를 위로한다.

     

    Triumph of the Death / Buffalino Buffalmacco, 1336-1341, Campo Santo, Pisa

     

    중세 말기의 종교적 사고는 죽음의 장소에서 두 가지 양 극단밖에는 알지 못했다. 현세적인 것들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과 영혼의 구원에 대한 기쁨, 두 가지 만을. 그 외의 모든 중간적 감정들은 표현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감동은 혐오스럽고 위협적인 죽음의 사실적 표현 속에서 딱딱하게 경직되어버렸다. 

     

     

    출처> 중세의 가을 / 호이징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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