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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방에서의 로마 제국주의
    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9. 5. 2. 20:47

     

    기원전 200~133

     

     

    Republican barbarous semis from Hispania. 209-200 B.C. Saturn head. Prow to left. 

     

     

    로마인들은 동방에서 영토를 인수하지 않는 방식의 제국주의를 추진하는 동안,

    북 이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는 영토 인수에 초점을 둔 제국주의 정책에 열심이었다. 

    왜냐하면 경험상 로마의 안전에 치명적으로 중요한데다 잠재적 적의 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지역들에 대해서는 통제권을 행사할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이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농경 종족들로 느슨히 조직되어 있었다. 로마가 간접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할 만한 큰 도시국가들이나 영토에 기반을 둔 군주국이 없었다. 대리인으로 세울만한 정치 엘리트도, 평화 공존을 위한 기초를 제공할 만한 공통된 사상이나 가치관도 없었다. 

    그러므로 로마의 관점에서는 직접적인 정복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THE IBERIANS DRIVEN UNDER THE ROMAN YOKE

     

     

     

    북이탈리아의 갈리아 종족들은 기원전 390년 이래로 주기적으로 로마 영토를 침략하거나 항상 로마의 적과 한 편이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자유로워지자마자 북 이탈리아의 갈리아인들에게 빚을 갚기 시작하여 기원전 195~175년에 포강 양쪽에 식민도시들을 건설했다.

     

     

     

     

     

     

     

    북 이탈리아의 중심지역이 정복되고 안정된 이후 로마인들은 해안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기원전 181년에 그들은 아드리아 해의 머리 부분인 아퀼레라에 식민시를 건설했는데 이 도시는 훗날 로마가 이스트리아와 달마티아 해안을 정복할 때 도약대 역할을 했으며, 아퀼레이아는 공화정 후기와 제정 초기에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무역항이었다.

     

    기원전 172년경 원정을 거듭한 뒤, 로마인들은 이탈리아 쪽과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 지방을 마실리아 접경에 이르는 먼 지역까지 장악했다. 

     

     

     

    북부 지방의 점령과 정착에는 도로 건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로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기원전 187년의 콘술 가이우스 플라미니누스였다. 그는 아레티움(아레초)에서 보노니아를 잇는 새 플라미니누스 가도를 건설했다.

     

     

     

    Ducarius  decapitates Flaminius at the Battle of Lake Trasimene, by  Joseph-Noël Sylvestre . Béziers (Languedoc-Roussillon)

     

     

     

     

     

     

     

    그의 동료 콘술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옛 플라미니우스 가도의 종착지인 아리미눔에서 보노니아를 지나 플라켄티아를 잇는 저 유명한 아이밀리우스 가도를 건설했다. 

    이어서 카시우스 가도가 건설되어 저 멀리 아퀼레이아까지 북 이탈리아를 관통하는 전략적 도로가 되었다. 약 20년 뒤에 또 다른 중요한 도로인 포스투미우스 가도가 북이탈리아를 관통하였다. 여러 보조 도로들이 건설되었고 그로써 짧은 시간 안에 북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반도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전쟁은 그쳤고, 라틴어가 널리 보급되었다.

    로마는 급속도로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어갔다. 

     

     

     

     

    ROMAN COINS, REPUBLIC, ANONYMOUS (C.206-200 BC), SILVER

     

     

     

     

    히스파니아 정복

     

     

    히스파니아는 작은 공동체들과 서로 분리된 여러 씨족들로 나뉘어 있었다. 서로간에도 의사 소통이 힘들었고 그들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로마인들은 소아시아를 정복할 때처럼 몇 번의 중요한 전투로 그들을 정복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히스파니아인들이 사용하는 게릴라 전법 때문에 크게 낭패했다. 전쟁은 133년까지 계속되었고 그 뒤에도 아우구스투스 때까지 히스파니아는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출처> 로마사 - 프리츠 F 하이켈하임, 세드릭 A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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