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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품으로서의 전쟁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7. 18:25

     

    Giorgio Vasari’s Battaglia di Marciano in the Palazzo Vecchio of Florence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예술품의 성격을 갖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는 다만 몇 마디로 암시할 생각이다. 중세 서양에서 개별적인 전사의 교육은 당시의 방어와 무기 체계의 한계 안에서는 가장 완벽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축성 기술과 포위 기술에서 천재적인 발명가들이 있었다. 다만 전략과 전술은 실질적, 시간적인 수많은 이유에서 전투 의무가 제한되었다는 점과, 귀족의 명예심을 통해서 발전 과정에 방해를 받았다. 예를 들면 귀족은 적을 앞에 놓고서도 전투에서의 우선 순위를 놓고 다투고, 맹목적 광포함을 통해 크레시 전투와 모페르튀 전투같은 가장 중요한 전투들을 망쳤다.

    인문주의자들의 '전쟁 기술'

     그에 반해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용병 제도가 도입되었다. 총과 대포가 일찍 발전한 것도 전투를 어느 정도 민주화하는 데 기여했다. 가장 강한 요새들도 돌 대포를 두려워했고, 기술자, 대포 주조자, 포병 등이 시민적인 방식으로 얻은 기술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발명품들을 인정하고 각각의 화력에 따라 적절하게 이용하였으며 그로인해 이탈리아인들은 공격 수단과 축성 기술에서 전유럽의 교사가 되었다. 우르비노의 페데리고, 페라라의 알폰소 같은 군주들은 이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였다. 종합적인 전쟁학과 전쟁 기술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태어났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정확한 전쟁 지휘 자체에 대한 중립적인 기쁨을 보게 된다. 이것은 용병대장들이 자주 편을 바꾸는 일 같은 순수하게 실용적인 행동 방식에 잘 어울린다. 1451년에서 1452년까지 프란체스코 스포르짜와 야코포 피치니노 를 각각 대장으로 삼은 밀라노-베네치아 전쟁 동안 문사 포르첼리오노는 나폴리 알폰소 왕의 부탁으로 야코포 피치니노의 사령부를 따라 다니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은 순수한 라틴어는 아니지만 당시 인문주의 과장법으로 씌어진 유창한 라틴어 문서다. 전체적으로 카이사르의 전쟁 기록을 모범으로 삼아서 연설, 불가사의한 징조등을 끼워 넣었다...포르첼리오의 보고서 말고도 전쟁 묘사, 전략 기록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이탈리아 문헌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아주 쓸모가 있다...전투 기록에 나선 가장 위대한 딜레탕트는 마키아벨리로서 그는 당시 <전쟁의 기술Dell'arte della guerra>을 썼다. 

     개별적인 전사戰士의 교육은 한 쌍 혹은 복수의 쌍이 벌이는 화려한 싸움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였다. 승리자는 북부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시인들과 인문주의자들에게 찬양받았다. 이런 싸움의 결말은 신의 심판으로 여겨지지 않고 개인의 승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구경꾼에게는 군대 혹은 국민의 명예를 만족시키는 이외에 내기를 할 수 있었다. 

     전쟁을 이렇듯 완전히 이성적으로 취급한것이 특별한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고약한 잔학 행위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정치적 증오 없이도 용병들에게 미리 약속한 약탈을 허용하는 따위의 일들이다. 스포르짜가 자신의 병사들에게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40일간의 피아첸짜 약탈(1447)이 있은 다음 도시는 오랫동안이나 텅 비었고 강제 명령을 통해서만 다시 거주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뒷날 외국 군대가 이탈리아게 가져온 참상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에스파냐 군대들은 서양의 혈통이 아닌 혈통이 덧붙여져서인지, 아니면 종교 재판을 구경하는 일에 익숙했던 탓인지 인간 본성의 악마적인 면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프라토, 로마 등지에서 그들이 행한 잔학 행위를 아는 사람은 훨씬 뒷날에도 '가톨릭 교도 페르디난트' 와 카를 5세에 대해 고귀한 의미의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군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 그들을 풀어놓았던 것이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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