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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로네제 Veronese
    이.탈.리.아 문화/미 술 belle arti 2020. 12. 2. 14:30

     

    파올로 베로네제 Paolo Veronese, 1528년 - 1588년

     

     

    Self-portrait

     

     

     

    1528년 출생, 파올로 칼리아리가 본명인 파올로 베로네제는 고향 베로나의 이름을 따서 베로네제라고 불린다. 

    석공이었던 아버지 가브리엘레 칼리아리를 따라 석공 일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본인의 회화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게 컸기 때문에 14세가 되자 화가인 안토니오 바딜레의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베로네제는 후에 자신의 장인이 된 바딜레로부터 회화 기법과 고대 건축물과 인물을 조화시키는 취향을 이어 받는다.

    1543년에 제작된 Badile의 제단화에서 15세의 견습생 베로네제의 솜씨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조숙했던 재능은 곧 바딜레의 작업장 수준을 능가하게 되어, 1544년에는 베니스의 유명 화가였던 Giovanni Francesco Caroto의 공방으로 옮겨간다.

    그는 많은 동시대 화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마니에리즘 예술에 매료되어 Giulio Romano, Raphael, Parmigianino 및 Michelangelo의 작품을 연구했고, 그 영향은 당시의 작품들에 나타난다.

     

     

    "La Minerva con la Geometria e l'Aritmetica", Treville의 Villa Soranza, 1551

     

     

     

    1551년 Treville의 Villa Soranza 프레스코 벽화의 우아한 장식미에서 그가 마니에리즘의 새로운 관용구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1552년에 작업한 만토바 대성당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emptation of St. Anthony〉에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1

     

     

    Temptation of St. Anthony, 1552

     

     

    1553년 두칼레 궁의 천정화 및 벽화를 의뢰받아 베네치아로 이주한다. 

    파올로 베로네세는 두칼레 궁전의 여러 부분을 장식하는 일과 관련하여 베네치아의 대가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게 되었다. 베로네세가 처음으로 의뢰받아 완성한 살라 델 콘실리오 데이 디에치(10인 위원회 회의실)의 천장화는 원숙기에 이른 그의 화풍을 보여준다. 1

     

     

    Sala del Consiglio dei Dieci

     

     

     

    Detail

     

     

    그림을 보는 이의 머리 위에서 인물들이 실제로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교묘한 단축법과 화려한 색채 및 그늘진 부분에도 색채로 명암을 구사하는 밝은 화면이 두드러진다. 1

     

     

    Detail

     

     

     

    Detail

     

     

     

    Detail

     

     

    이외에도 산 세바스티아노 교회 (1556–57)의 천장화와 Marciana 도서관 작업이 베로네제를 동시대 베네치아인들 사이에서 거장으로 자리 매김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로네세는 산세바스티아노 수도원을 장식하고 있는 동안 제단화와 예배용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수없이 받았으며, 〈만찬 Suppers〉을 그려달라는 주문도 여러 번 받았다. 〈엠마오의 순례자들 The Pilgrims of Emmaus〉과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열린 잔치〉 같은 그림에서 묘사한 만찬이라는 주제는 그로 하여금 복잡한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 넣을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배경의 건축물은 베로네세가 미켈레 산미켈리와 안드레아 팔라디오 및 자코포 산소비노 같은 16세기 베네치아 건축가들의 작품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증명해준다. 1

     

     

     

    The Pilgrims of Emmaus, c 1560

     

     

     Detail

     

     

    파올로 베로네세는 팔라디오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번역가인 마르칸토니오 바르바로와 다니엘레를 위해 지은 마세르의 저택을 장식하게 되었는데(1561), 이것은 베로네세 자신의 예술적 발전만이 아니라 베네치아 회화의 발전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단계를 이루었다(빌라 바르바로). 베로네세는 동생 베네데토의 도움을 얻어 그림의 배경이 되는 건축물을 그리면서 벽을 환상적인 풍경화로 채우고 천장에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그려 넣고 푸른 하늘과 연결시킴으로써 그 저택의 팔라디오식 건축양식이 가진 리듬과 훌륭하게 조화시켰다.

    마니에리스모 대신 등장한 조화로운 리듬과 뛰어난 색채 처리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프레스코(인간의 쾌락을 예찬하는 신화적 장면들, 바르바로의 아내가 아이들과 유모와 함께 있는 장면, 고대 유적을 환상적인 원근법으로 섬세하게 묘사한 풍경화들)에 훈훈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1

     

     

    decoration of the villa at Maser, 1561

     

     

     

    View from the Sala dell'Olimpo, facing east 1560 - 1561, Painting, Fresco  Villa Barbaro, Maser

     

     

    Nobleman in Hunting Attire,  Villa Barbaro, Maser

     

     

     

    Bacchus, Vertumnus and Saturn (detail)  Villa Barbaro, Maser

     



     

    〈알렉산드로스 앞에 있는 다리우스 가족 The Family of Darius Before Alexander〉과 쿠치나 가문을 위해 그린 훌륭한 초상화를 비롯한 몇몇 그림들은 엄숙하고 위풍당당하며, 보다 유기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1

     

     

     

    The Family of Darius Before Alexander, 1565–1570

     

     

     

    파올로 베로네세의 그림들, 특히 그가 1573년에 산조반니에파올로 수도원의 주문을 받아 그린 〈최후의 만찬〉은 기발하고 참신한 이야기의 세부 묘사가 풍부한 것이 특징인데 이 때문에 종교재판소 이단자 심문소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단자 심문소는 파올로 베로네세를 소환하여 그 그림에 대해 변호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그 그림이 앵무새를 안고 있는 어릿광대나 개 또는 코피를 흘리는 하인 등, 최후의 만찬이라는 성스러운 주제에 전혀 걸맞지 않은 부적절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그림을 비난했다. 베로네세는 "우리 화가들은 시인이나 미치광이들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갖는다"고 대답하여 상상의 자유에 대한 화가의 권리를 능숙하고 확고하게 옹호했다. 이단 심문소는 아마 민사 당국자들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림의 주제를 〈레비가의 잔치 Feast in the House of Levi〉로 바꾸라고 제의함으로써 이 문제를 재치 있게 해결했다.

     

     

    Feast in the House of Levi, 1573

     

     

    Detail

     

    Detail

     

     

     

    파올로 베로네제는 1588년에 열병에 걸려 며칠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동생과 두 아들은 그를 산세바스티아노 수도원에 묻고 그의 무덤 위에 흉상을 세웠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하던 작업을 계속했고, 완성된 작품에는 '파올로의 후계자들'(Haeredes Pauli)이라고 서명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훌륭한 스케치와 밑그림을 활용할 수 있었다. 파올로 베로네제의 마지막 작품들 중에는 그가 신성 로마 제국의 루돌프 2세를 위해 그린 연작으로 〈헤라클레스의 선택〉과 〈지혜와 힘의 우의〉(미국 뉴욕 프릭 컬렉션) 등을 비롯한 훌륭한 우의화가 있으며, 그 밖에도 등장인물들이 조화로운 리듬에 따라 서로 묶여 있는 〈사랑으로 결합된 마르스와 비너스 Mars and Venus United by Love〉(미국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가 있다.

    또한 흔들리는 듯한 우울한 풍경을 배경으로 성서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들(빈 미술사박물관)도 있다. 비애감으로 가득 찬 소규모 제단화인 〈병든 소년을 고치는 성 판탈레오 St. Pantaleon Healing a Sick Boy〉와 〈피에타〉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극적인 특성과 명상적인 분위기를 보여 준다. 베로네세가 당대뿐 아니라 후세에도 수백 년 동안 사랑을 받은 이유는 화려한 색채와 빛으로 인물과 순수한 건축 구조물에 생동감을 부여한 그의 또 다른 특성인 차분함에 있다. 1



     



    1  [Daum백과] 파올로 베로네세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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