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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밀라노 시기
    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11. 22. 13:33

     

     

    1482년, 레오나르도는 밀라노 대공의 후원을 받게 되어 피렌체를 떠났는데, 30세의 예술가가 그리다 만 <동방박사의 경배>와 팔라쪼 시뇨리아의 산 베르나르 교회 제단화 의뢰를 버려둔 채 밀라노로 떠나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The Adoration of the Magi

     

     

    레오나르도의 경험 지향적 사고 방식에는 당시 피렌체 상류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신 플라톤주의보다는 밀라노의 엄격한 학문적 분위기가 맞았을 수도 있고, 동성애자라는 익명의 고발 때문에 여러 가지 기회에서 제외되었던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루도비코 스포르자 백작의 화려한 궁정과 그를 기다리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다.

    그는 1499년 루도비코가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17년간을 밀라노에서 보냈다. 왕실 명부에 pictor et ingeniarius ducalis (공작의 전속 화가이자 엔지니어)로 등재되어 있던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궁정 연회의 기획자, 토목 건축 및 군사 문제의 기술고문으로 활약했으며, 수력과 기계에 관한 공학자로도 일했다.

    레오나르도의 사려 깊고 품위 있는 성격과 우아한 태도는 밀라노 궁정 사람들에게 환영존경을 받았다. 

    1480년대 말부터 다 빈치는 인체 해부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는 베로키오의 도제 시절부터 신체와 두개골 구조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신체 구조를 파악하여 인간의 인식과 행동, 상상, 기억 등의 정신 활동, 궁극적으로 영혼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의 기록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화론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의 비례를 정밀하게 따지고, 꼼꼼히 관찰하여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예술-과학’ 이론을 정립했으며, 인체 비례, 눈동자, 태아 등에 관련된 수많은 드로잉과 글을 남겼다. 1

     

     

    Vitruvian Man, c. 1490

     

     

    그는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기록해둘 필요를 느꼈는데, 이는 당시의 몇몇 예술 논문들에서 자극받은 것이기도 했다. 1485년,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건축론 De re aedificatoria〉,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의 〈건축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Architecture〉,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쓴 〈회화에서의 원근법에 관하여 De prospectiva pingendi〉 등이었다. 2

    1490~95년 레오나르도의 거대한 집필계획이 시작되었다.

    거기에는 그의 필생의 중요한 4가지 주제가 포함되었는데, 회화에 관한 논문, 건축에 관한 논문, 기계학의 원리에 관한 글, 인체 해부에 관한 개요가 그것이다. 그 밖에도 지구물리학·식물학·수리학·기상학에 관한 연구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레오나르도가 어렴풋이 생각해낸 '눈에 보이는 우주론'(visible cosmology)의 일부를 이룬다. 그는 관념적인 지식을 경멸하고, 체험에서 직접 보고 터득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을 받아들여 기록했다.

    이 모든 연구와 스케치는 수천 장에 이르는 노트와 낱장의 종이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어떤 화가가 남긴 것보다도 분량이 가장 많은 문학적 유산으로 옛 문헌에 언급된 40편 남짓한 사본들 가운데 21편이 남아 있으며, 이중에는 원래 분리되어 있던 것이 합본된 노트와 함께 모두 31편이 보존되어 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처음 이러한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낱장의 종이나 허리띠에 찬 조그만 스케치북에 관찰한 것들을 재빨리 스케치한 뒤 그것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순서대로 노트에 끼웠다. 2

     

     

     



    그는 밀라노에서 지낸 17년간 단지 6점의 회화 작품만을 남겼다. 체칠리아 갈레라니를 그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Lady with an Ermine〉을 비롯해 〈악사 Musician〉, 제단화로 그린 2점의 〈암굴의 성모 The Virgin of the Rocks〉,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에 그린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 Supper〉(1495~97), 밀라노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에 있는 살라 델레 아세의 천장화(1498)이다.

     

     

    Portrait of a Musician, c.  1483–1487  (unfinished)

     

     

     

    The Virgin of the Rocks, 1483–1486, located in the louvre

     

     

     

    Lady with an Ermine, 1489–1490

     

     

    1495년경부터 다 빈치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 빈치의 최고작이자 서양 미술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구성, 빛, 원근법에 대한 그의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통적인 프레스코화 방식이 아닌 마른 회반죽 위에 템페라로 그리는 실험적인 방식을 택했고, 모든 인물의 배치와 동작, 크기는 고도의 계산 아래 이루어져 있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제자들이 예수에게 누가 배신할 것인지 묻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다 빈치는 상징물을 사용하여 각 인물을 드러내는 대신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게 했다. 1



     

    Last Supper, 1490

     

     

     

    카스텔로 스포르쩨스코 북동편 1층 살라 델레 아세의 천정화, 1496 and 1498 (복원 후의 모습)

     

     

     

    Sala delle Asse Ceiling decoration detail, 1496 and 1498

     

     

    Sala delle Asse Ceiling decoration detail, 1496 and 1498

     

     

    Sala delle Asse Ceiling decoration detail, 1496 and 1498

     

     

    Sala delle Asse Ceiling decoration detail, 1496 and 1498 <restored>

     

     

     

     Castello Sforzesco, Milano

     

     

     

    The Virgin of the Rocks, 1495-1508 located in the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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