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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사의 논리 - 바로크
    이.탈.리.아 문화/인문학 scienze Umanistiche 2020. 9. 19. 09:04

     

    뵐플린은 엄격한 것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폐쇄적인 형식에서 개방적인 형식으로 나아가는 발전에서 예술사의 전형적인 전개과정을 찾고자 한다. 그는 제정 로마시대, 후기 고딕, 17세기 및 인상주의의 양식사를 서로 평행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이러한 각 시대에는 언제나 객관적인 엄격한 형식을 갖춘 고전주의가 지나고 나면 일종의 바로크, 즉 주관적 감각주의와 다소간은 급진적인 형식 해체가 뒤따랐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두 양식의 양극성을 예술사의 기본 공식으로 생각하였고, 만약 보편사적 법칙성과 역사발전의 주기성이 존재한다면 이 공식이야말로 그런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전형적 양식의 주기적 반복에서 출발해서, 예술사에는 어떤 내면적 논리와 독자적이고도 내재적인 필연성이 지배한다는 테제를 추출하였다. 여기서 뵐플린의 비사회학적 방법은 하나의 반역사적 교조주의가 되고 완전히 임의적인 역사 구성이 되는 것이다. 헬레니즘의 '바로크', 중세 후기의 '바로크', 인상주의의 '바로크'및 본래의 바로크 사이의 공통점이란 이들 각 시대가 동일한 사회적 여건을 내포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만 현실화되는 것이다. 설령 고전주의 다음에 바로크가 뒤따랐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보편적인 법칙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내재적인, 즉 순형식적인 근거만으로써는 하나의 발전과정이 왜 어느 특정 시점에서 엄격한 것에서 더욱 엄격한 것으로 나아가지 않고 엄격한 것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문제를 결코 해명하지 못한다. 발전의 '정점'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역사적 상황, 즉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상황이 일정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종결시키고 그 발전방향을 바꾸게 되는 순간이 '정점'이 되고 여기서 새로운 전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양식의 변화는 오로지 외부적인 사정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자체 내의 시한을 지닌 것은 아닌 것이다. 

     

     

    Nicolas Poussin, Le Paradis terrestre ou le Printemps,1660-1664

     

     

    Lorrain, Landscape with the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1666  

     

     

    뵐플린이 내세운 범주의 대부분은 바로크 시대의 고전주의적 예술에는 적용될 수 없다. 푸생과 클로드 로랭은 '회화적'이지도 '불명료'하지도 않으며, 그들 예술의 구성 또한 비건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 작품의 통일성도 루벤스 같은 화가의 과장되고 팽팽한 의지와 압도적인 박력으로 추구되는 통일성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바로크를 하나의 양식적 통일체로 운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한 시기 전체를 지배하는 통일적 '시대 양식'이라는 말을 우리는 결코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나 예술적으로 생산적인 사회 그룹의 수효만큼이나 상이한 양식의 수도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주도적인 예술 생산이 단 하나의 문화담당 계층에 의해서 유지되었고 이들의 작품만이 보존되어 있는 시대의 경우에도, 그들 이외의 다른 계층의 예술 생산품이 혹시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도중에 상실된 것은 아닌지를 검토 해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상류계층의 비극과 함께 민중적인 광대극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이 광대극의 중요성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몇 개의 단편적인 작품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또한 중세에도 세속적・대중적인 예술이 교회 예술에 비해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작품을 두고 우리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더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직도 지배계급이 분화되지 않은 이러한 시대에도 예술 생산의 완전한 통일성이 없었다고 한다면, 하물며 17세기처럼 사회적・경제적・종교적인 면에서 이미 완전히 방향을 달리하는 여러 문화계층이 존재하고 이들이 예술에 완전히 상이한 과제를 맡기던 시대에 예술 생산이 단일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한층 더 어려운 일이다. 로마 교황청의 예술적 목표와 베르사유에 있는 왕궁의 예술적 목표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고, 또 이 양자에 공통된 것도 시민계급과 칼빈주의가 득세한 홀란드의 예술 의욕과는 결코 일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신적 분화과정을 촉진하는 발전은 동시에 문화적 생산품의 보급 및 상이한 문화 영역 간의 상호 영향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각국의 정신적 활동을 끊임없이 통합하는 일에도 공헌했다는 사실은 도외시 하고라도,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화창조의 하나인 새로운 자연과학과 자연과학적 지향을 지닌 새로운 철학은 처음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학문에 표현된 보편적인 세계 감정은 또한 당대의 모든 복잡다기한 예술 생산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적인 세계감정

    새로운 자연과학적 세계관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주가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학설은 신의 섭리에 정해졌던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오랜 위치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왜냐하면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할 때 인간 역시 더이상 창조의 의미와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은 단순히 세계가 지구와 인간의 주위를 도는 것을 중지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세계가 더이상 어떠한 중심점도 갖고 있지 않고 다만 동일한 모습과 가치를 지닌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부분들의 통일성은 오로지 자연법칙의 보편타당성 속에서만 드러남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학설에 따르면 우주는 무한대이고 그럼에도 통일적이며 단 하나의 원리에 의해 조직된 상호 작용적이고 연속적인 체계요, 또한 하나의 유기체적인 살아있는 관계이자 원활하게 기능을 발휘하는 잘 정리된 일종의 기계장치, 당시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하나의 이상적인 시계장치였다. 예외라는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 자연법칙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신학적 의미와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의미의 필연성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신의 임의성에 관한 생각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서 인간만이 신의 총애를 받을 수 있고 신의 초월적인 존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인간의 특권에 대한 생각 역시 밑바닥부터 뒤흔들렸던 것이다. 인간은 이제 마술이 걷힌 새로운 세계에서 아무런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는 하나의 조그마한 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점은 인간이 그의 변화된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자기 신뢰와 자존심의 감정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고 지배하는 거대한 우주를 이해하고 그 법칙을 산출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의식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의 무한한 자아 감정의 원천이 되었다. 

    종전의 그리스도교적・이원론적 현실이 바뀌면서 생겨난 이러한 동질적・연속적인 세계에서는 종전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 대신에 우주적 의식, 즉 인간은 물론이고 인간 존재의 궁극적 원리까지도 내포하는 무한한 상호작용, 상호 관련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세계를 이와 같이 빈틈없이 조직된 하나의 체계로 보는 견해는 중세적인 신의 개념, 즉 세계질서의 바깥에 존재하는 인격신의 개념과는 합치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세적 초월주의를 대체하고 나온 내재적 세계관은 단지 내부로부터 작용하는 신적인 힘만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세계관은 체계적으로 전개된 학설로서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 핵심을 이루는 범신론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상의 대부분의 진보적 요소들이 그러하듯 화폐경제와 중세 후기의 도시 및 시민계급의 발생, 그리고 유명론의 승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딜타이는 "현대 유럽의 범신론의 성립은 위대한 13세기 이후 거의 3세기에 걸친 정신적 변혁의 소산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 끝에 나타난 것은 세계의 재판관으로서의 신에 대한 외경심 대신에 이른바 '형이상학적 전율', 파스칼이 말한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을 앞에 둔 불안이었고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끊임없는 긴 숨결에 대한 경탄이었다. 

    바로크의 모든 예술은 이러한 전율과 무한한 공간의 메아리 및 모든 존재의 상호 관련성으로 충만해 있다. 예술작품은 그 총체성에서 모든 부분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라는 점에서 우주의 상징이 된다. 작품의 각 부분은 마치 천체와 같이 무한하고 빈틈없는 전체와의 관련을 보여준다. 각 부분은 제각기 전체의 법칙을 내포하고 있고 각 부분의 어디서든지 동일한 힘과 동일한 정신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급한 각도의 대각선, 원근법에 의한 과격한 단축, 의도적인 조명 효과 등은 모두 무한으로 향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내면의 충동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예술가가 무한한 것을 표현하려는 자신의 작업이 실제로 성공할는지 결코 안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선은 먼 곳에 눈길을 보내고, 모든 움직임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는 듯이 보이며, 모든 모티프는 긴장과 안간힘의 상태에 놓여 있다. 심지어 일상생활을 그린 홀란드 화가의 평정 뒤에서도 우리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무한성과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유한한 것의 위태로운 조화를 느낀다. 이러한 것이 바로크 예술의 한 통일적 특징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하나의 공통된 특징만으로 바로크 양식의 통일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딕을 단순히 중세의 정신주의에서 추출하려는 시도가 그러했듯이 바로크를 이러한 무한성의 추구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려는 노력 역시 부질없는 일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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