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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에리즘 II
    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8. 22. 07:39

     

    마니에리즘의 발견

    고전주의에 대한 마니에리즘(매너리즘)의 관계처럼 우리 자신의 전통에 대한 관계에서 깊은 문제성을 안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마니에리즘이라는 예술 양식이 지니고 있는 창조적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니에리즘이 고전주의 예술을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게 모방한 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느끼던 고전주의 모델로부터의 내면적 괴리에 대한 과잉보상이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매너리즘의 모든 중요한 예술가들, 예컨대 폰토르모와 파르미지아니노, 브론치노와 베카 푸미, 틴토레토, 엘 그레코, 피터 브뢰겔과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어 등에서 보이는 양식적 경향이 무엇보다도 고전주의의 너무 단순한 규칙성과 조화를 해체하고, 고전주의 예술의 초인격적 규범성을 더욱 주관적이고 더욱 암시적인 특징으로 대체시키려는 노력이었음을 알고 있다. 매너리즘의 이러한 경향은 한편으로는 종교적 체험의 심화 및 내면화이자 인생을 파악하는 새로운 정신적 세계의 발전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의식적 -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고 때로는 괴상하고 난해한 것에 심취하는 주지주의였으며, 또 어떤 때는 이를테면 까다로운 식도락가의 향락적 취향처럼 모든 것을 섬세하고 고상한 것으로 번역해서 생각하는 예술 취향으로서, 결과적으로는 고전주의적 형식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적 해결은, 그것이 고전주의 예술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었든 아니면 고전주의 예술의 형식적 성과를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었든 간에 언제나 하나의 파생적인 산물로서, 궁극적으로는 고전주의에 의존하여 자연체험보다는 문화적 체험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자의식적'인 양식을 대하게 되는데, 그 표현방식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전대의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전대 예술에의 의존도는 지금까지의 어떤 중요한 예술경향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예술가의 의식은 자신의 예술 의지에 상응하는 수단을 선택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예술 의지 자체를 스스로 규정하는 데까지 확대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론적인 기획이 이제는 예술적 방법의 선택에만 한정되지 않고 예술적 목적 자체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너리즘은 최초의 근대적 예술 양식, 즉 문화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전통과 혁신의 관계를 이론적, 합리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파악한 최초의 예술 양식의 방향이기도 하다. 여기서 전통은 다만 너무 격렬하게 밀어닥치는 새로운 것, 즉 생의 원칙이자 파괴의 원칙으로 느껴지는 일체의 새로운 것에 대한 하나의 방벽에 불과하다. 매너리즘의 고전주의적 예술 모방이 다가오는 혼돈으로부터의 도피이고 매너리즘 형식에 나타나는 지나친 주관적 ・ 신경질적인 긴장은 형식이 삶과의 투쟁에서 무력해지고 예술이 영혼 없는 아름다움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마니에리즘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매너리즘이 오늘날 현실성을 지니고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며 틴토레토, 그레코, 브뢰겔 및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르네상스가 부르크하르트 세대에 의해 재평가되고 바로크가 리글과 뵐플린 시대에 의해 그 명예가 회복된 사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처한 오늘날의 정신적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파르미지아니노를 역겨울 정도로 가식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했고, 뵐플린 역시 매너리즘을 자연스럽고 건강한 발전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방해 요소, 말하자면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등장하는 불필요한 간주곡쯤으로 생각했다. 내용과 형식, 미와 표현 사이의 갈등을 자기 자신의 절실한 문제로 체험해본 시대만이 비로소 매너리즘에 대해서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또 르네상스 및 바로크와 구분되는 매너리즘의 특성을 추출해낼 수 있다. 막스 드보르자크로 하여금 예술사에서 정신주의적 경향의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였고 매너리즘을 그러한 경향의 승리로 파악할 수 있게 했던 예술적 체험, 즉 인상파 이후의 예술에 대한 실제적이고도 직접적인 체험이 뵐플린에게는 아직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드보르자크는 매너리즘 예술의 의의가 정신주의에 의해서만 완전히 해명될 수는 없고 또 매너리즘의 정신주의라는 것도 중세의 초월주의와는 달리 현실세계에 대한 완전한 포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그레코와 같은 화가 옆에는 브뢰겔과 같은 화가가, 토르쿠아토 타쏘와 같은 시인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도 있었다는 사실을 결고 간과하지 않았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바로 매너리즘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상이한 현상들, 즉 정신주의적 현상과 자연주의적 현상 사이의 상호관계 및 이들 간의 공통분모와 문화 원리를 밝혀내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너무 이른 그의 죽음으로 이 예술사가의 논술은, 그가 말한 '연역적' 경향과 '귀납적' 경향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전개되지 못했다. 그의 필생의 연구서가 미완성으로 그쳤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그가 더 이상 전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가장 애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Stigmate di santa Caterina, Domenico Beccafumi, 1515

     

     

    Joseph in Egypt, Pontormo,1518

     

     

    Saint Mark's Body Brought to Venice , Tintoretto, 1562 

     

     

    자연주의와 정신주의

    매너리즘에 흐르는 두 개의 대립적 흐름 - 엘 그레코의 신비적 정신주의와 브뢰겔의 범신론적 자연주의 - 은 항상 별개의 예술가에게 구현된 별개의 양식 경향으로서 나란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다. 폰토르모와 피오렌티노 로소, 틴토레토와 파르미지아니노, 안토니 모르와 브뢰겔, 마르텐 반 헴스케르크와 자끄 칼로 등은 이상주의자이자 동시에 단호한 현실주의자였고 그들의 예술에 보이는 자연주의와 정신주의, 무형식 주의와 형식주의, 구상성과 추상성 사이의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복잡한 통일성은 그들을 함께 묶는 양식 전체의 기본 공식이다. 이러한 여러 경향들의 이질성은 드보르자크의 생각과는 달리 예술작품에 표현할 현실의 강도를 선택함에 있어서 단순한 주관주의나 순수한 자의성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성의 기준 자체가 동요되었음을 말해주는 징표이며, 중세의 정신주의를 르네상스의 사실주의와 결합시키려는 거의 절망적인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St. John the Evangelist and St. Francis of Assisi, El Greco, 1600

     

     

    The Peasant Wedding,   Pieter Bruegel the Elder, 1567

     

    고전주의적 조화의 붕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르네상스의 예술관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했던 공간의 통일성이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면의 통일성, 각 부분의 상호적 연결, 공간구조의 일관된 논리성은 르네상스에서 하나의 그림이 예술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전제조건들이었다. 원근법에 의한 체계, 비례나 구조에 관한 모든 규칙 등은 단지 이러한 공간적 논리성이나 통일성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매너리즘은 이러한 공간의 르네상스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하나의 장면을 외면적으로만 서로 분리했을 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서로 다르게 조직된 여러 공간 부분으로 분해하여 표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매너리즘은 한 그림의 부분 부분이 제각기 상이한 공간가치, 상이한 기준, 상이한 운동 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한 부분에는 공간 절약의 원칙이, 다른 한 부분에는 공간 낭비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 통일성의 해체는 화면의 인물들을 재는 척도나 주제 상의 의미가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상호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본래의 대상에서는 부차적인 의미밖에 갖지 못하는 모티프가 때로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면, 반대로 주된 모티프로 생각되는 것이 공간적으로 평가절하되어 한쪽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엑스트라인지는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이러한 그림은 결국 비합리적, 자의적으로 구성된 공간 내에서의 실제 인물들의 동작, 환상적 테두리 안에서의 자연주의적 개개 사물 상호 간의 결합, 그리고 얻고자 하는 효과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공간 계수의 변형과 조작이라는 느낌을 안겨준다. 이와 같은 혼합된 현실상에 가장 가까운 것은 꿈인데, 꿈은 현실의 여러 관계를 폐기하고 사물들을 추상적인 상호관계 속에 넣으면서도 동시에 개개의 사물을 가장 선명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매너리즘의 이러한 꿈과 같은 세계는 현대의 초현실주의를 상기시킨다. 예컨대 현대 회화에서의 연상 묘사, 카프카의 작품에 나타나는 몽환적 환상, 조이스 소설의 몽타주 수법, 영화가 보여주는 자유자재한 공간 처리 등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현대예술의 경향을 체험하지 못했더라면 매너리즘이 오늘날 실제로 지니고 있는 만큼의 중요성을 획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The Agony in the Garden of Gethsemane, El greco, 1590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야후 이탈리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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