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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의 팜므파탈 -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ㅣ
    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 스캔들 scandali 2010. 4. 22. 18:15



    1500년대 화가 Bartolomeo Veneziano 의 초상화



                                                                          

    이건 어느시대 그림일까,  라파엘 전파?





    진정한 라파엘전파의 대표화 Dante Gabriel Rossetti 의 루크레치아



    동시대 사람들은 그녀를 경멸하거나 두려워 했고


    사후 수백년 동안은 예술가들이

    그녀를 그리고, 오페라로 만들어

    그녀의 역을 연기하고

    책을 쓰고, 영화를 찍었다.


    그녀의 무엇이 이렇게

    500년 이상의 시간을 살아 남으며

    끊임없이 인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일까? 


    39세로 죽은 그녀는 

    오늘 날에도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악녀로, 성녀로, 불행했던 한 여인으로...



     

    루크레치아가 거처하던 방


    팜므파탈의 조건이 무엇일까, 홀려서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은 치명성 
    그녀의 실체가 악녀이든 성녀이든
    외면적인 아름다움이 오히려 독이 된, 운명에 치인 평범한 여자였든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1480년,

    으시시하고 거대한 집안에서 일단은 팜므파탈계의 초청장을 확실하게 손에 쥐고 태어난다. 

    아버지는 교황 Alessandro Xl세, 그의 정부였던 어머니, 오빠는 인류사에 한 획을 그어버린 독특한 악당 체자레 보르지아 Cesare Borgia .





    이것이 천장화로 남겨져 있는 그녀의 가문.

    교황좌에 앉아있는 아버지, 아랍풍이 취향이었다는 냉미남 체자레,

    그리고 아버지 앞에 무고한 천사처럼 서있는 루크레치아를 볼 수 있다.

    이런 가족 천장화를 남길 수 있었던 집안...그녀 주변의 누구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고

    돈과 권력은 넘쳤다

    그래도 아버지도, 오빠도 만족하지 못한다


      Giovanni Sforza and later Alfonso d'Este Giovanni Sforza and later Alfo



    nso d'EsteGiovanni Sforza and later Alfonso d'Este     zoom in~




    미남으로 명성을 떨치던 오라버니 체자레

    수백년 후

    마키아벨리를 좋아하는 일본작가 -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제목의 책을 쓴다 '체자레 보르지아 혹은 우아한 냉혹'.

    살인도, 학살도, 불륜도 패륜도, 천사나 악마처럼 무심하게 해치우는 남자로 그려지고

    루크레치아는 그 모든 것을 무연하게...한 세상 건너가는 여자로 그려졌다.


    무도회에서 남매가 춤을 춘다

    가해자인 오빠와 피해자인 누이 - 둘 중에 누구도 변명 하거나 단죄 하지 않고

    우아하고 냉혹하게...그리고 그 천연의 무연함으로 둘이 꽁꽁 묶여서.


    그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우아한 해석 혹은 

    냉혹한 상상 



    역사에 기록된 루크레치아는 -


    열 세 살 때 두 번 약혼, 두 번 모두 아버지의 주도로 파혼.

    교황이 된 이후

    밀라노 공국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녀를 지오바니 스포르짜와 결혼시키고,

    더 이상 필요 없게되자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아들 체자레와 힘을 모은다.

    교황의 이혼 권유를 거절하면서 지오바니는

    루크레치아가 아버지, 오빠와 근친상간을 했다고 교황청에 고발.

    그리고 오고가는 치명적인 개인사 - 이른바 개싸움은

    교황의 완승으로 끝난다.


    결혼 무효 과정이 길어지는 동안

    그녀가 아버지 심부름꾼의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쨌든

    이 아이...

    "1501년, 아이 조반니 보르지아에 관하여 두 개의 교황교서가 반포되었다.

    첫 번째 교서에는 체사레의 결혼 전에 낳은 아이로 인정.

    두 번째 교서에는 아이를 알렉산드로 6세의 아들로 인정.

    루크레치아의 이름은 어느 쪽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녀가 그의 어머니라는 소문은 지금까지도 증명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교서는 긴 세월 동안 비밀로 지켜졌으며, 조반니는 체사레의 아들로 추정되었다..."

    - 위키백과



    영원히 살 것같던 아버지가 죽자

    루크레치아는 이 아들과 함께 페라라로 떠나고

    그 곳에서는

    조반니가 그녀의 이복동생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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