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큰 통치자 가문들 - 만토바의 곤짜가 가문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1. 31. 12:01

     

     

     

    15세기 후반, 유능한 군주들이 대표하는 잘 정돈된 두 통치자 가문이 있었으니 바로 만토바의 곤자가 가문과 우르비노의 몬테펠트로 가문이었다. 곤짜가 가문 사람들은 가족끼리도 상당히 의가 좋았다. 오래 전부터 이 집안에는 암살 사건이 없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프란체스코 곤자가Francesco Gonzaga 후작과 그의 아내 이사벨라 데스테 Isabella d'este 는 때로 느슨하기도 하지만 아주 기품있고 서로 의견이 잘 맞는 부부였다. 그들은 작지만 매우 중요한 이 나라가 극단적인 위험에 자주 노출되곤 하던 시대에 자신의 아들들을 중요하고도 행복한 사람들로 키웠다. 

     

     

     

    Francesco II Gonzaga

     

    Isabella d'Este by Tiziano

     

     

     

    프란체스코가 군주로서나 용병대장으로서 특별히 반듯하고 정직한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는 당시의 황제나 프랑스왕, 베네찌아 그 누구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타로 전투 이후로 그는 적어도 무기의 명예에 관해서라면 스스로 이탈리아의 애국자라고 느꼈고, 그의 아내도 이 의견을 공유했다.

    그녀는 체사레 보르자에 맞서 파엔짜를 방어하는 것 같은, 영웅적인 청절의 표현이 이탈리아의 명예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판단하는데 아름다운 후작부인의 후원에 대해 넉넉한 찬양을 아끼지 않은 예술가들과 문필가에게 굳이 의존할 필요는 없다. 그녀 자신의 편지들이 흔들림 없이 침착하고 교활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Isabella d'Este 1474-1539-Marchesa of Mantua & a leading woman of the Italian Renaissance as a major cultural & political figure, a patron of the arts & a leader of fashion

     

    Portrait of Isabella d'Este by  Leonardo da Vinci

     

     

     

    벰보, 반델로, 아리오스토, 베르나르도 타쏘 등은 자신들의 작업을 이 궁정으로 보냈다. 그곳은 작고 힘도 없고 자주 국고가 텅 비곤 했는데도 말이다. 우르비노의 궁정이 해체된 이후로 이보다 더 섬세하고 사교적인 궁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만토바 궁정은 행동의 자유라는 점에서 페라라 궁정마저도 능가했다. 이사벨라는 특히 예술을 잘 알았고,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지만 매우 정선된 그녀의 수집품 목록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Palazzo ducale

     

    Castello di San Giorgio

     

     

     

     

     

    Camera degli Sposi (Bridal chamber) by Andrea Mantegna in the Ducal Palace

     

    i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