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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ri
    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10. 6. 14. 17:12


    Dante Alighieri (1265, Firenze- 1321.09.14 Ravenna) 

    '신곡'은 이탈리아 어로 쓰여진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이며 세계문학 걸작 중에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1]









    단테는 세르반테스, 세익스피어, 괴테와 달리 보편성을 지닌 유럽인이었다.
    이런 광범위한 영향력은 아마도 당시 유럽의 공용어라고 할 수 있던 중세 라틴어에 가까운 토스카나 방언과 종교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테가 태어나던 무렵의 피렌체는 금융과 통계학에 힘입어 베네치아와 함께 유럽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단테의 생애는 작가가 직접 남긴 문헌이 없기 때문에, 최초의 단테학자인 보카치오에 의해 쓰여진 <단테의 삶>과 빌라니와 콤파니의 <연대기> 정도가
    가장 시간적으로 근접한 기록인데, 보카치오의 경우도 단테와의 격차가 반세기나 되고 정치적 이유로 당시에는 거의 잊혀진 인물이었으므로
    지극히 간접적인 정보에 의거했다고 보아야 하며, <연대기>는 단테에 대한 직접적인 조명이 아니라 당시 피렌체 사회에 투영된 단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피렌체 단테의 집




    이미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단테는 어려서 모친상을 당해 유모의 손에 길러졌으며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은 것 같다.
    후에 산타 크로체 Santa Croce 수도원에서 3학과(문법, 논리학, 수사학) 와 4학예(산술학, 음악, 기하학, 천문학)를 수학한다.
    그 중에서도 수사학은 그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과목이다.







    산타 크로체 Santa Croce 교회, 1294 년 경 착공
    프란체스코 교단

    (왼쪽에 서있는 것이 단테의 석상)






    단테는 라틴 어 이외에 프랑스어와 프로방스 어에 정통했으며 음악, 무용, 노래, 그림, 법률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18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시를 썼으며 고전을 계속해서 연구했는데, 특히 베르질리우스는 그가 가장 높이 평가한 시인이었다.
    또한 구이도 구이니첼리Guido Guinizelli의 새로운 시작법에도 관심을 가졌다.

    1285년경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는데, 결혼 후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가담하게 된다.

    당시 피렌체는 구엘피 당과 기벨리니 당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전자는 중산층을 옹호하고 후자는 상류층의 대변자였다.
    단테가 속해있던 구엘피 당이 득세하자 그는 정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의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단테가 산 지미냐노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교황은 토스카나 지방을 교황청에 예속시키려고 했던 인물로서, 시기는 약 1300년 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단테는 피렌체를 다스리는 6인 행정위원 중에 하나였는데
    구엘피 당이 흑당과 백당으로 갈라지면서 피렌체는 또 다시 당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백당은 교황청과 단지오 왕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피렌체의 독립을 지키려고 하였고, 흑당은 기회주의에 편승하여
    교황을 지지했던 것이다. 단테는 백당에 속해있었다.
    로마의 교황에게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단테가 시에나에 이르렀을 때 백당이 패배하고 단테도 교황의 분노를 샀으므로
    세가지 벌을 선고 받는데, 선고 내용은 벌금, 2년간의 귀양, 공민권 박탈이었다.
    단테가 이에 응하지 않자 재산 압수와 함께 무기한의 추방령이 내려지게 된다.

    끝없는 유랑 생활이 시작되었다.
    무력을 써서라도 피렌체로 돌아가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는 혼자 베로나, 트레비소, 파도바, 로카, 파리 등지를 배회하며
    처참한 생을 영위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비정하고 악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1310년 독일계 교황 아리고 7세를 배척하던 피렌체를 비난하면서 단테는 교황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아리고를 제국을 다시 부흥시킬 적격자로 보았던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로 해서
    피렌체는 1311년 추방당한 백당들에게 일대 사면권을 주었을 때 단테를 제외했던 것이다.
    2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아리고 교황은 끝내 피렌체를 휘하에 넣지 못한 채 1313년 죽음을 당한다.

    1315년에도 사면령이 내려 유랑자들을 불러 들였다.
    단테도 자신의 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하면 돌아갈 수 있었으나, 수락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을 퍼부었다.
    피렌체 흑당은 이에 분노하여 사형을 선고하는 궐석재판을 진행한다.

    단테는 라벤나로 돌아가 구이도 노벨로의 비호를 받으며 신곡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는 데 전념한다.

    어쩌면 이 작품의 명예에 힘입어 금의환향할 수 있기를 기대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벤나에서 1321년 9월 14일, 5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Vita Nova, 1283 - 1292



    '새로운 삶 - 新生'은 '향연'과 더불어 신곡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거론되는 책이다.
    이 세 작품을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세 작품이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Vita Nova는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을 이상화하고
    신비화한 시와 산문으로 시인이 그의 친구 구이도 카발칸티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단테는 9살이 되전 해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다




    " 내가 태어난 이래 빛의 하늘이 자체의 공전에 따라 아홉 차례 똑같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 마음에 그리던 영광스러운 여인이 내 눈 앞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녀를 베아트리체라 불렀다 "

    Vita Nova 2





    Dante and Beatrice, 1915. By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그로부터 9년 후 그는 또다시 그녀를 만난다.



     " 그런 뒤 앞에 기록한 바와 같이 이 거룩한 여인이 나타난 이래 정확히 아홉 해가 될만큼 많은 날들이 지나
    그 마지막 날에 이르렀을 때
    이 찬탄할 만한 여인이 두 명의 고귀한 여인들 사이에서 하얀 옷을 입고 내게 나타났다 "

    Vita Nova 3






    <새로운 삶>은 사페뇨Sapegno가 지적하듯이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을 이상화 시킨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전기적 요소로 보는가 우의적 allegorico 요소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Convivio 향연 1304 - 1307


    향연은 새로운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철학도가 참조할 수 있도록 백과사전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Convivio 란 '향연 - 정신적 향연'을 뜻한다.
    단테는 이 향연을 가능한 한 대중들도 즐길 수 있도록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쉬운 이탈리아 어로 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알베르토 마뇨의 이론을 근거하여 전파하는 내용으로
    선각자들의 학설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윤리, 철학, 자연 과학,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단테는 <향연>에서 드디어 고양된 산문체(이탈리아 어로 쓰인)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의 산문체 역시 중세의 수사학에 바탕을 둔 것이었던 것으로,
    단테를 가리켜 중세의 마지막,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중세의 뿌리에서 영양을 취해
    새 시대의 잎을을 싹트게 했다는 데 있다.











    단테가 문체를 중요시했던 사실은 라틴어 저작인 <속어 수사학 De vulgari eloquentia>에 잘 나타나 있다.
    이탈리아에서의 문학언어를 개발하려는 의도로 로망스어 계통을 연구한 결실이다.












    Divina commedia 신곡 1300 -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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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키백과

    나머지 내용 발췌> 이탈리아 문학의 이해 - 한 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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