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are Pavese (1908.9.9  Santo Stefano Belbo,   – 1950.8.27 Torino)
이탈리아의 작가, 시인, 번역가










토리노 법원 Palazzo di Giustizia 의 고위직이었던 아버지와 유복한 상인 가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파베제의 유년기는 행복하지 않았다:  세 형제가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병약하여 파베제는 유모의 손에 키워졌다.

1914년 아버지가 뇌암으로 사망했을 때 그는 6살이었다. 빈첸조 아르노네 Vincenzo Arnone가 썼듯이 그의 유년기에는

"본능적인 부끄러움으로 눈물을 참던 어린 파베제가 조숙해져야 할 모든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작가의 인생에 동반하고 흔적을 남긴 - 인간적, 문학적 근원의 모든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타계한 아버지 대신 자식들의 교육을 맡게 된 어머니는 그를 몹시 엄격한 학교로 보냈는데, 이는 체자레의 극도로 내성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더 이상 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1916년 집을 팔고 자식들과 함께 지방의 작은 빌라로 이사한다.

초등학교를 마친 체자레는 예수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중학교로 진학했고, 이어서 Cavour 공립학교에 등록한다.

이 무렵 문학에 매혹당한 파베제는 구이도 다 베로나,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평생동안 우정을 나눈 마리오 스투라니Mario Sturani와 만나게 되었고, 열심히 도서관에 출입하며 초기 습작들을 남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23년 알피에리 Alfieri 를 발견하고, 청소년기의 풋사랑, 동급생들과의 우정의 시기를 지난다.

빗속에서 6시간을 기다리던 무희에 대한 사랑, 깊은 흔적을 남긴 동급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라틴어와 그리스어 수업...

토리노 대학 문학과에 입학하던 시기 그는 월터 휘트만과 미국문학에 매료되었는데 결국 졸업논문의 주제가 되기에 이른다.[1]


















그 이후



길게 늘어진 언덕이 정적 속에서 비에 젖는다.

지붕 위로 비가 내린다. 좁은 창문은

더욱 신선하고 생생한 녹색으로 충만하다.

여인은 나와 함께 누워 있었지. 텅 빈 창문,

보는 사람 아무도 없고, 우린 벌거벗고 있었어.

그녀의 비밀스러운 육체는 지금쯤 거리를 걷고 있으리라,

가볍고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그 걸음걸이처럼

가볍고 흐트러진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여인은 습기 속에 잠든 헐벗은 언덕을

보지 못한다.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길거리를 걷고 있다.

저녁 무렵이면

언덕은 물안개에 휩싸이고, 창문은

안개의 숨결을 마신다. 길거리는

지금쯤 텅 비어 있겠지. 오로지 언덕만이

음울한 육체 속의 아득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

우린 두 육체의 습기 속에 흐트러진 채

반쯤 졸리운 상태로 누워 있었어.

따듯한 햇살과 신선한 색깔들로 좀더

부드러운 저녁이면, 거리에는 즐거움이 넘치겠지.

주위 가득히 육체의 기억을 즐기면서

길거리를 걷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거리의 낙엽 속에, 여자들의 무감각한 걸음걸이 속에.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는, 두 육체가 잊어버린 생명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그건 정말로 기적이다.

그리고 문득 거리 저너머 집들 사이로 언덕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여인도 좁은 창문에서

그 언덕을 바라보고 있으리라고.

헐벗은 언덕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비가 속살거린다. 부드러운 육체와 미소를

함께 가져왔던 여인은 이제 없다.

하지만 내일 새벽의 깨끗한 하늘 아래

여인은 날렵한 걸음걸이로

거리로 나갈 것이다. 원하면 우린 만날 수도 있겠지



지중해



친구는 거의 말이 없고 그 말마저 이상하게 들린다.
바람 부는 아침 그 친구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둘 중의 하나, 새벽녘에, 여자를 버렸다.
거리를 바라보며 습기 찬 바람, 평온함, 혹은
지나가는 행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친구는 저만치 서 있고
담배 피울 생각도 않는다. 바라보지도 않는다.
어느 날 아침
우리가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그 흑인도 담배를 피웠지
흑인은 길모퉁이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지
━밖에서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그 검붉은
포도주도 희미한 하늘도 그의 것은 아니었어.
맛을 생각하지도 않았어. 아침마저 여느
새벽의 아침이 아니었어. 그 흑인에게는
세월을 넘어선 그저 단조로운 하루였어.
머나먼 고향의 생각이 배경처럼
서려 있었지만, 그는 생각하지 않았어.
거리에는 여자들과 신선한 빛살이 있었고
바다 냄새가 흐르고 있었지.
우리는 여자들에게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어. 그저
앉아서 생명의 소리를 듣고, 저기 아직도 졸음에 겨운
신선한 햇살 아래, 바다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족했지.
우리의 하얀 여자들은 흑인 곁으로 지나가고,
흑인은 너무나도 음울한 손을 향해 시선을
낮추지도 않았고, 숨조차 쉬지 않았어.
우리는 한 여자를 버렸고, 그날 새벽
평온함과 길거리와 그 포도주,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것처럼 여겨졌지.
지금은 행인들이
나를 산만하게 하고, 친구가 습기 찬 바람 속에
담배를 피우려 움직이는 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잠시 후 내게 묻는다.
포도주를 마시며 담배 피우던 그 흑인을 기억하나?

  



사람들은 파베제의 소설이 냉정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제재가 실제로 폭력적인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화자의 조심스러운 주관성때문이다. 파베제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태도는 평정심이며, 전형적인 문제는 의사소통의 단절이다.

그의 소설들은 의식의 위기에 관한 것이며, 의식이 붕괴되도록 놔두지 않으려는 노력에 관한 것이다. 감정의 발육불능, 쇠약해진 정서나

육체적 생명력이 소설의 전제가 된다. 어린 나이에 환멸을 느껴버린 자의 고뇌, 자기의 감정을 놓고 아이러니와 우울함을 번갈아 실험하는

교양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러나 현대적인 감성의 이런 탐구 - 가령, 지난 80년 동안 이뤄진 프랑스의 시와 소설 대다수 -

와는 달리 파베제의 소설들은 파격적이지 않으며 세련됐다. 주요 장면은 항상 무대 밖이나 과거를 배경으로 벌어진다. 그는 성애의 장면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피한다.

그의 주인공들이 타인과 맺는 관계는 대부분 구속력없이 느슨하다. 이를 벌충이라도 하듯이 파베제는 그들을 하나의 장소 -대개 토리노나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피에몬테 중에 한군데 - 에 결속시킨다.[2]





Imagen Il carcere, Einaudi, Torino, 1949  감옥

Imagen Paesi tuoi, romanzo, Einaudi, Torino, 1941 당신의 마을(들)

Imagen La bella estate, Einaudi, Torino, 1949, 아름다운 여름

Imagen La spiaggia, romanzo, 1941, nuova edizione postuma, Einaudi, Torino, 1956. 해변

Imagen Racconti, raccolta postuma, Einaudi, Torino, 1960 단편

Imagen Dialoghi con Leucò, Einaudi, Torino, 1947

Imagen Il compagno, romanzo, Torino, 1947 친구

Imagen La casa in collina, Einaudi, Torino, 1949 언덕 위의 집

Imagen Il diavolo sulle colline, Einaudi, Torino, 1949 언덕 위의 악마

Imagen Tra donne sole, Einaudi, Torino, 1949 여자들 끼리

Imagen La luna e i falò, romanzo, Einaudi, Torino, 1950 달과 모닥불

Imagen Le Poesie, Einaudi, Torino, 1962

Imagen Il mestiere di vivere. Diario 1935-1950, Einaudi, Torino, 1952 산다는 일. 일기








[1] 위키백과 이탈리아

[2] 해석에 반대한다. 도서출판 이후  p.72  수잔손탁 Susan Son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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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작가, 파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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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Pietro di Cristoforo Vannucci (1450, Città della Pieve – 1523, Fontignano)

약 20~30 년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알려진 화가였으며, 피렌체와 페루지아에 활동적인 공방을 운영했다.

움브리아 지방 특유의 부드러운 형식을 통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빛과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선을 사용하여 빛과 기념비적인 형상을 조화시켰다.










The Adoration of the Magi (Epiphany)
c. 1476
Panel, 241 x 180 cm
Galleria Nazionale dell'Umbria, Perugia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
1481-82
Fresco, 335 x 550 cm
Cappella Sistina, Vatican














The Galitzin Triptych
1481-85
Tempera, transferred from wood to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Moses's Journey into Egypt and the Circumcision of His Son Eliezer
c. 1482
Fresco, 350 x 572 cm
Cappella Sistina, Vatican















detail














detail















detail















The Vision of St Bernard
1493
Oil on wood, 173 x 170 cm
Alte Pinakothek, Munich
















Portrait of a Young Man (detail)
1495
Oil on panel, 37 x 26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Fortitude and Temperance with Six Antique Heroes
1497
Fresco, 291 x 400 cm
Collegio del Cambio, Perugia















The Almighty with Prophets and Sybils
1500
Fresco, 229 x 370 cm
Collegio del Cambio, Perugia






















Magdalen
1500
Oil on panel, 47 x 34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Combat of Love and Chastity
1505
Canvas, 160 x 191 cm
Louvre, Paris




















Self-Portrait
c. 1500
Fresco, 40 x 30,5 cm
Collegio del Cambio, Peru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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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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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RGIO ARMANI : July 11, 1934, Piacenza
1957년 병역의무를 마친 아르마니는 리나센떼 La Rinascente 백화점 윈도우 코디네이터로 시작했는데,
1961 -1970 까지 니노 세루티 Nino Cerruti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1970년 부터 프리랜서로 작업한다.
친한 친구이던 Sergio Galeotti 와 함께 1974년 Giorgio Armani S.p.A사를 설립하고 남성복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1975년 부터 여성복도 생산하기 시작한다.
세르지오 갈레오띠(1985년 사망) 이후 여동생 Rosanna Armani 와 함께 일하고 있다.




























아르마니社는 공식적으로 1975년 7월 24일, 밀라노 Corso Venezia 에서 처음 시작했고
몇달 후 밀라노 플라자 호텔의  prêt-à-porter (S/S 1976) 에 참가해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다.
1978년 섬유 금융 그룹의 후원으로 아르마니사는 사업 규모면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된다.
1979년 "Giorgio Armani Corporation" 은
Le Collezioni, Armani junior, Giorgio Armani Accessori, Giorgio Armani Underwear e Giorgio Armani Swimwear  라인을 탄생시키며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기 시작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아르마니는
프랑스 로레알사에 제조를 위임한 향수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Armani Jeans e Emporio Armani 라인을 만들었다.







Rosanna Ar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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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대 왕 루시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Lucius Tarquinius Priscus (Ital. Lucio Tarquinio Prisco)
675 a.C. (?) – 616 a.C

재위기간 : 616 a.C. - 579 a.C.










기원전 616년, 로마에 에트루리아 출신 왕이 등극했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그의 사례는 로마 정치계가 로물루스의 시대 - 목자들간의 패권다툼 - 와는 규모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부유한 그리스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에트루리아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에트루리아식 이름은 루쿠모네Lucumone였다.
가문의 부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부친이 에트루리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서 정치인으로 권력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유력한 귀족출신 타르나퀼과 결혼한 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을 찾아 타르퀴니아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외국인에게 활짝 열려있는 로마는 미래의 권력을 꿈꾸던 그들에게 적합한 도시였다.
로마로의 이민에는 수많은 친구들의 가문이 뒤따랐는데, 그들이 미래 타르퀴니우스의 정치적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는 더욱 완벽한 사회적 융합을 위해 루쿠모네라는 에트루리아 이름을 루치오 타르퀴니오(라틴어 루시어스 타르퀴니우스)로 바꾼다.
그는 부와 인맥으로 정치계에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 또한 타르퀴니우스 부부의 귀족적인 태도에 호감을 느끼게 되어
정치고문으로 기용하고 그에게 자식들의 교육을 맡긴다.
안쿠스가 죽자 타르퀴니우스는 즉시 왕의 자손들을 로마에서 멀리 내보내고 유창한 웅변술로 로마시민의 호응을 얻어내어 자신을 왕으로 선출하게 한다.















타르퀴니우스는 치세기간 중에 도시를 재탄생하게 하는 대규모 건축사업을 시행했다:

  • 도시 주변에 새로운 성벽 건설

  • 팔라티노를 정면에 마주하고있는 왕궁 건설

  • 베스타 신전과 사제관 건설

  • 거대한 쥬피터 신전을 건립하기 시작(그의 생전에는 토대만 완성되었음)

  • 포룸 로마노의 전신인 포룸 계곡과 무르치아 계곡(팔라티조와 아벤티노 사이의 계곡)의 습지 개간

  • 무르치아 계곡을 Circus Maximus의 전신인 말들의 경주장으로 만듬









팔라티노 언덕에서 보이는 Circus Maximus








  • 후에 Cloaca Maxima 로 발전되는 대규모 배수로 공사






빨간 선이 Cloaca Maxima 大배수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는 로마 문화 전체에 영향을 준다.

종교 또한 신인 동형의 에트루리아와 그리스 종교적 색채를 띄기 시작하며, 목자들의 전통인 애니미즘적인 요소를 포기하게 된다.

왕은 누마 폼필리우스처럼 권력과 종교 간의 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선 각 가정에 신상을 모시던 종교적 관습을 공공장소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근느 또한 정복된 여타 라틴인들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를 파괴시키고 로마에 외지인들의 신전을 지어 주었다.

이런 일련의 통합 작업들이 로마로 하여금 라틴민족의 중심지/지도적인 도시의 위치를 점하게 한다.














왕이 금색 찬란한 자색 의복을 입고 말 네필이 이끄는 마차에서 승전의식을 치루는 것, 선홍색 토가를 걸치는 것, 

의자 sella curalis , 의식에 쓰이는 권표 등 트루리아 문명의 흔적들이 다음 세기부터는 로마의 진정한 상징으로 뿌리내린다.

에트루리아인의 로마 지배는 로마의 문화와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와 에트루리아 문화가 아니었다면 로마가  "Caput Mundi" (head of the world) 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텍스트 출처> http://www.romaspq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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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directer : Frida Gia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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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방망이(밀대)로 밀어 만드는 딸리아뗄레tagliatelle, 딸리올리니tagliolini, 라자냐lasagne, 라비올리ravioli, 토리뗄리니 tortellini 등
신선한 파스타 pasta fresca 는 그 역사가 길다.

모두가 시간에 쫓기는 오늘날 가정에서 막 만든 신선한 딸리아뗄레로 만든 파스타를 기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맛있는 파스타를 만드는 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반죽에 15-20분, 30분 정도 놓아두는 시간, 반죽을 밀고 모양을 만드는데 15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맛있고 신선한 요리를 위해 1시간 정도야 가뿐하지 않은가, 완벽한 반죽을 만들기 위해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반죽을 하고 밀기 위한 작업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 나무로 만든 작업판이 가장 적당하다 -
반죽을 마르지 않게 하려면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
밀가루 100g 에 계란 하나가 적당하며, 반죽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10분은 주물러야 한다.
주무르다가 이따금씩 반죽을 작업대에 힘차게 던져 주어야 더욱 찰기가 생긴다.
반죽이 끝나면 젖은 면헝겊을 덮고 상온에 30분간 놓아둔다.
반죽을 밀때에도 필요한 만큼씩만 덜고 나머지 반죽은 젖은 헝겊으로 덮어 놓아야 한다.
반죽을 밀기 전에 작업판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밀대로 민다.
또르뗄리니를 만드실거라면 반죽을 하기 전에 소를 먼저 만들어 놓고, 계란의 양을 줄인다.











재료 :  밀가루 400 gr / 소금 1/2 티스푼 (취향에 따라 조절) / 계란 4개 (1개당 최소한 70gr 이상)




■ Preparazione






Pasta fresca all uovo




1. 잘 고른 밀가루를 작업판 위에 쏟고 가운데 구멍을 만들어 준다
2. 상온에 놓아두었던 계란을 하나씩 깨서 구멍 안에 넣는다.
3. 소금을 넣는다.




Pasta fresca all uovo



1. 포크로 계란 부위를 서서히 저어 섞는다.
2. 가장자리의 밀가루를 조금씩 조금씩 모아 들이며 반죽을 섞는다
3. 항상 반죽의 바깥 쪽에서 안쪽으로 모아들여 반죽한다





Pasta fresca all uovo



1. 반죽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거나 살짝 된 것 같으면 미지근한 물 1 -2 큰스푼을 첨가한다
2. 계속 주물러서 반죽이 매끈하고 찰지게 될때까지 반죽한다
3. 반죽이 완성되면 랩에 싸서 건조하고 신선한 장소에 약 1시간 정도 놓아둔다





Pasta fresca all uovo


1. 상온에 놓아 두었던 반죽은 더욱 부드럽고 차지게 되었을 것이다
2. 바닥에 밀가루를 바르고 밀기 전에 손으로 잠깐 반죽을 주무르고, 납작하게 만들어 밀기 좋게 만든다
3. 미는 요령은 반죽 한 끝을 밀대에 둥글게 말고, 반죽 반대쪽 끄트머리를 손으로 잡은 후 (사진 12) 밀대를 둥글려가며 하는 것이다
   밀대를 바깥으로 밀 때는 힘들 더 주고, 안으로 말아들일 때는 힘을 줄인다.
   반죽 네 방면을 골고루 작업하면서 원하는 두께가 될때까지 민다



Pasta fresca all uovo



1. 모양이 잡혔으면 본격적으로 밀어 두께를 약 0.5cm 가 될 때까지 민다
2. 두께가 적당해 졌으면 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둥글게 만다





Pasta fresca all uovo



1. 적당한 두께로 썰어준다 딸리아뗄레는 5-7mm, 딸리올리니는 2-3 mm, 빠빠르델레라면 1.5 -2 cm
2. 써는 즉시 둥글게 말린 면발을 풀어서 헝겊이나 밀가루를 발라놓은 판위에 펼쳐놓는다
3. 브로도(탕)에 넣을 꽈드루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1X1cm로 썬다





Pasta fresca all uovo



1. 라자냐를 만들 계획이라면 밀어놓은 반죽을 20x14 cm 로 썬다 (라자냐를 만들 용기에 맞는 크기로 썰면 된다)
    가장자리에 남은 반죽은 어떡하냐고? 걱정마시라 말딸리아띠(사진21) 를 만들면 된다






■ 요리팁


전통 계란 파스타 l’aggiunta di oliva처럼 올리브 오일을 넣고 싶다면 계란을 넣고 난 다음 단계에서 기름을 첨가하면 된다


딸리아뗄레를 만들고 나서는 밀가루를 발라놓은 용기에 널어놓으면 붙지도 않고 모양이 망가지지도 않는다.

면을 삶을때는 되도록 깊은 용기에 물을 많이 넣고 펄펄 끓을 때 면발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는다











출처> Sonia Peronaci 의 블로그 Giallo Zaff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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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복 패션쇼



여성복 디자이너 : Frida Giannini




1972, 로마 출생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마 Accademia di Costume e di Moda 출신으로
1997년 Fendi의 prêt-à-porter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피혁제품 디자이너로 일한다.
2002년 Gucci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를 옮겨
처음에는 핸드백 디자인을 하다가 전체적인 액세서리 디자인을 맡게 된다.
2005년 5월 전임 Alessandra Facchinetti 를 이어받아 여성복 팀을 전담한다.
2006년 구찌 전체 상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진했다.












사진 포스팅 출처> alanmising 님의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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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Gucci,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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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nico Ghirlandaio ( 1449 – Firenze,  11/01/1494 Firenze ) 

보티첼리, 필리포 리피와 동시대인으로 르네상스의 위대한 마에스트로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으며 동시대 피렌체의 유명인들을 그려 불멸성을 부여했다.

미켈란젤로가 길란다이오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한 것은 짧은 기간이었으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프레스코 벽화작업에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길란다이오의 자화상

Ospedale degli Innocenti 의 벽화 '동방박사의 참배', 1488


















VISITATION, 1486-1490

프레스코화, Firenze Santa Maria Novella



















최후의 만찬

1486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detail)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Giavanna Tornabuoni 의 초상

1488, 75X50cm


















할아버지와 손자의 초상

62X46cm, Louvre


















Study, c. 1486
Ink on paper, 260 x 170 m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Study of garments
, c. 1491
Brush drawing on paper, 290 x 130 m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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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 알라 볼로네제 는 에밀리아 로마나 지방의 전통음식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스이다.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이 가능하며, 고기도 어떤 고기를 선택해서 소스를 얼만큼 끓이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이렇게 수많은 라구 소스 중에도 볼로냐의 Accademia Italiana della Cucina에서 1982년 10월 17일에 공식화한 라구 공식 레시피가 있는데
cartella 라는 기름기가 많은 부위의 돼지고기를 쓴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지방을 적게 섭취하려는 오늘날의 추세에 따르려면 까르뗄라보다는 저지방 육류를 넣어서 소스 끓이는 시간으로 맛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베이컨도 지방이 훨씬 적은 수제소세지로 대신하면 훨씬 기름기 부담이 적어진다.












재료 : 육수 250 ml / 돼지고기 다리살 간것 250 gr/ 소고기 간것 250 gr / 수제 소세지(혹은 베이컨) 100 gr
         토마토 - 3배 농축된 페이스트 30g / 당근 1 / 양파 中 1 / 샐러리 1 줄기
         우유 1 컵 / 올리브유 3 큰스푼 /  후추(취향에 따라 양 조절) / 적포도주 1컵 / 소금 약간 / 버터50 gr




■ Preparazione





Ragu alla bolognese



1. 당근과 양파를 다듬고, 샐러리의 실같은 섬유질을 분리해서 사진 2처럼 다져놓는다.
2. 우묵한 남비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버터를 녹인다.






Ragu alla bolognese




1. 버터가 다 녹으면 다진 야채를 넣고 금빛이 될 때까지 잘 저어주며 익힌다.
2. 수제 소세지를 다져서 간고기와 섞는다.
3. 육류를 모두 야채 익히던 남비에 넣고 가끔 저어주면서 고기가 핑크빛이 될 때까지(너무 익지 않아야 한다) 익힌다.






Ragu alla bolognese



1. 적포도주를 넣는다.
2. 육수 약간에 3배로 졸인 토마토(시중에 나와있는 페이스트를 써도 좋지만 이탈리아제가 아닌 경우 단맛이 날 수 있으므로 구하기 힘들면 숙성토마토를 사다가
    양이 1/3로 줄어들때까지 끓인다) 를 녹인다.





Ragu alla bolognese



1. 남비에 토마토 푼 육수를 붓는다.
2. 소금을 조금 넣어서 잘 섞어주고 약 1시간 30분 동안 약한 불로 끓인다.
3, 가끔씩 육수를 한번에 조금씩 여러번 보충해준다.
4. 마지막으로 우유를 넣는다.
5. 라구소스가 완성되면 소금과 후추를 취향에 맞게 넣는다.



라구에 가장 잘 어울리는 파스타는 신선한 딸리아뗄레이지만 평범한 스파게티도 좋고, 어느 파스타에나 어울린다.
라구 소스는 냉동저장해 놓았다가 데워서 즉석 파스타를 만들기도 좋고, 라자냐 만드는데도 쓰인다.
라구 알라 볼로네제 파스타가 완성되면 신선한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갈아서 뿌리면 더할 나위 없다 - 부온 아뻬띠또 !!













출처> Sonia Peronaci 의 블로그 Giallo Zaff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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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Sonia,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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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 Ancus Marcius (이탈리아어 Anco Marzio)
675 a.C. (?) – 616 a.C

재위기간 : 641 a.C. - 616 a.C












제 2 대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친구였던 아버지 Marcius와 누마 폼필리우스의 딸 폼필리아 Pompilia 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명문가 gens Marcia 의 일족으로, 사비나 족 sabini 의 후손이라고 한다.

















Ancus 라는 이름은 그의 구부러진 팔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누마 폼필리우스처럼 평화를 사랑하고 종교적인 왕이었으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을 하기도 했다.[1]

안쿠스 마르키우스가 왕으로 선출된 것은 로마가 전대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의 종교를 권력에서 분리시키는 정책에 따라 신성성이 많이 위축되어있던 시기였다.

그는 현명하게도 영토확장과 종교를 양립시켜가며 로마를 발전시킨 왕이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제사장을 시켜 이해 관계국을 먼저 찾아가 민생의 여론을 섭렵하게 하고,

신에게 계시를 물어 전쟁의 정당성을 얻은 후에 비로소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시키기 위해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시작한 라틴족과의 전쟁을 이어받아 최종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서

무르치아 계곡Valle Murcia 과 아벤티노 Aventino 언덕에 엄청난 숫자의 패전 이민족을 받아들였다.

이후 로마는 승전할 때마다 영토는 물론 인구를 증가시키곤 했다.


육지와 티베리나 섬을 연결하던 수블리치오 교각은

교각을 건설함으로서 로마를 강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던 안쿠스가 건설한 목제 교량으로,

후세 학자들에게 로마의 확장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이 교각 주변 지역은 곧 상업지역으로 변모하는데,

포로 보아리오foro Boario가  바다로 부터 소금을 실어 나르는 도로 via campania와 북쪽의 가축이동로 via salaria가 만나는 지점이었고,

북쪽 에트루리아의 도시들과 남쪽 라틴 도시들의 교역에 매우 적당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블리치오 근처의 포로 보아리오와 스깔로 띠베리노 Scalo Tiberino 가 중요해짐에 따라 지아니꼴로 언덕의 수비강화에 역점을 두어야할 필요성이 발생했다.


소금길은 로마 경제의 중요한 재원이었다.

이에 따라 안쿠스는 오래된 비아 캄파니아(테베레 강 오른쪽) 와 나란히 비아 오스티네제(테베레 강 왼쪽) 도로를 새로 건설함으로서 소금의 공급을 더욱 원활하게 했다.

[2]
















기원전 620년 테베레 강 하구에 식민도시 오스티아 Ostia 를 건설했다.[1]










 


안쿠스는  로마에 처음으로 교도소 Carcere Mamertino 를 만든 왕이었다.







Mamertine Prison
in Foro Romano










이곳은 후에 성 베드로와 바울이 갇혀있던 감옥으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616년 사망한 안쿠스 마르키우스와 함께 로마에서 사비나인의 군주시대는 끝났다.[2]
후대 마르키우스 왕족의 시조는 이 안쿠스 마르키우스이며, 공화국과 제국을 거치는 동안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1] 위키백과 이탈리아
[2] http://www.romaspq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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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끼Gnocchi :  고대 로마 시대에서 유래된 파스타의 일종으로,
밀가루, 옥수수가루, 쌀가루 등 여러가지 재료로 다양하게 만들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감자로 만든 뇨끼라고 한다.








 뇨께띠 베르디(뇨께띠는 뇨끼의 작은 모양을 일컫는 말이고 베르디는 '초록색'입니다) 는 전통적인 감자 뇨끼의 변형으로
감자와 시금치를 섞어서 예쁜 초록색으로 만듭니다.
시금치가 감자의 맛에 부드럽게 섞인
뇨께띠 베르디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버터에 볶아 파마산 치즈(빠르미지아노) 가루만 뿌리는
아주 단순한 레시피입니다  - Sonia











재료 : 밀가루 100 gr / 감자가루 700 gr / 소금 약간 / 시금치 400 gr




■ Preparazione





Gnocchetti verdi



1. 소금을 약간 넣은 물에 시금치를 삶는다
2. 감자를 껍질채 30-40분 정도 삶는다
3. 다 삶아진 시금치를 건져 물기를 꼭 짠다 (삶은 시금치가 약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어야 한다)






Gnocchetti verdi



1. 시금치를 잘게 다진다
2. 감자가 익으면 식혀서 껍질을 깐다
3. 감자를 완전히 으깨어(감자 퓨레 상태오 완전히 으깨야 함) 반죽이 가능한 판에 밀가루를 두르고 시금치와 함께 반죽한다
4. 반죽에 소금을 약간 첨가한다(모두 익은 상태이므로 맛을 보아가며 하는 것이 좋다)






Gnocchetti verdi




1. 8번과 같은 완벽한 반죽 상태가 되도록 밀가루를 적당히 넣어가며 반죽한다
2. 지나치게 오래 주무르게 되면 뇨끼가 딱딱해 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3. 사진 9 처럼 지름 2-3 cm 가래떡 모양으로 나누어 반죽한다





Gnocchetti verdi


1.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포크를 사용, 전통 뇨끼처럼 줄무늬를 넣어준다
2, 사진 12와 같은 줄무늬를 낼 수있는 기구를 사용해도 된다
3. 끓는 물에 삶아내면 훌륭한 뇨끼가 완성된다
- 파스타 소스는 취향에 따라 ~



■ 요리팁

시금치를 물에 삶지 않고 커다란 남비에 넣고 뚜껑을 덮은 뒤 가열해도 잘 익는다.







출처> Sonia Peronaci 의 블로그 Giallo Zaff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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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Sonia,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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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대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lat. Tullus Hostilius, Ital. Tullo Ostilio ; ? – 641 a.C.)
재위기간 BC 673 – 642










로물루스 시절 사비니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Hostus Hostilius 의 손자였던
툴리오 오스틸로(이탈리아어)는 로물루스의 복제판으로 평가되곤 한다.
두 사람 모두 목자들 사이에서 선출되었고, 피데네 Fidene와 베이오 Veio와의 전쟁을 계속했으며, 도시민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했고
군사력 증강과 훈련에 주력했기 때문이다.[1]
 








The Victory of Tullus Hostilius over the Forces of Veii and Fidenae

Giuseppe Cesari





누마의 평화스런 치세가 지루했다는듯이 툴루스가 왕위에 있는 동안, 로마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누마가 로마의 내부의 기초를 충실히 다져 놓은 기반으로 툴루스는 라틴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툴루스는 맨 처음 로마왕국의 모국인 알바롱가(Alba Longa)를 표적으로 삼습니다.
툴루스 이전까지는  로마 북부에 위치한 에쿠리아족에 대항하기 위해서 평화를 유지하던 알바롱가의 접경 지역에 사는
농민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 결과 발생한 약탈 변상을 알바롱가가 거부하는 것을 계기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80년 밖에 안된 로마에 비해서 알바롱가는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립국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강국인 에트루리아가 있었기 때문에 툴루스 왕은 각 나라의 대표끼리 시합을 해서 이기는 나라가 진나라를 다스리자는 제의를 했고

알바롱가는 승낙하게 됩니다.  로마 측에선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쌍둥이가 알바롱가 측에선 클리아티우스 가문의 세 쌍둥이를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두 어머니가 친자매인 사촌지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양군 진영 앞에서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전투를 개시합니다.

먼저 로마측의 전사 2명이 쓰러집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겁을 먹어 도망가게 되는데 도망 가다가 뒤를 돌아본 로마의 전사 호라티우스는

자신을 쫒아오는 알바롱가의 세 쌍둥이들 사이가 꽤 떨어져 있음을 알아챕니다. 호라티우스는  가장 먼저 쫒아온 알바롱가의 전사를 쓰러뜨립니다.

그 후 뒤 쫒아온 두 번째 적도 쓰러 뜨리고 마지막 한 명 마저 이기게 됩니다.[2]








The Oath of the Horatii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Jacques-Louis DAVID,1784
Oil on canvas, 330 x 425 cm
  Louvre, Paris





이렇게 6명의 전투는 끝났지만 알바롱가로서는 한 번의 전투로 허무하게 로마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기에 로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가까운 부족들을 선동해서 로마와 싸우게 됩니다. 알바롱가가 주변 부족들을 선동한 것은 좋았으나,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은채 전황을 주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이 로마는 주변 부족들을 하나씩 쓰러트립니다. 알바롱가는 제대로 로마와 싸워 보지도 못하고 로마에게 패하게 됩니다.

툴루스는 로마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알바롱가의 왕  Mezio Fufezio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그의 다리를 두 필의 말에 하나씩 묶어, 말에게 채찍질을 가해

반대반향으로 달리게 하여 능지처참합니다. 이 것이 로마의 최초의 능지처참이었다고 합니다 알바롱가 시는 철저히 파괴 되었고, 알바롱가의 백성들은 모두

첼리오 언덕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노예로서가 아니라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툴루스는 이들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줌으로서 로마의 전력이 더 한증 증강되는 효과를 봅니다.[2]







Curia Hostillia





그 후 툴루스는  광장에서 열리던 원로원 회의을 위해 쿠리아 호스틸리아(Curia Hostillia)로 불리는 원로원 건물을 건축하였고,

Fidene와 Veio를 차례로 정복하였으나

로마인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지고, 역병에 전염된 툴루스는 쥬피터에게 자신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원했으나

기원 도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벼락을 맞아 32년간 치세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2]












[1] 위키백과 이탈리아
[2] 네이트 역사학 지식인 - maymay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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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ce 는 인구 95,000 명의 뿔리아 Puglia주 레체 지방의 중요한 시청소재지이다.














레체의 문장

아드리아海로부터 11km, 이오니아海로 부터 23km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이 도시에는 대학교, 대주교관이 있으며, 살렌토 평야의 문화중심지이다.

올리브오일, 포도주산업 등이 발달했으며 도자기, 종이공예도 유명하고, 레체지방의 석재를 이용한 바로크 예술의 발달로도 잘 알려져 있다.

레체의 바로크 예술, 기념물들의 아름다움으로 해서 남쪽의 피렌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Lonely Planet  "Best in travel 2010" - 꼭 방문해야할 도시 20선에 선정되었다.





























































Santa Croce 성당
1549 -1695














Piazza del Duomo











Duomo













Porta San Biagio












Porta Rudiae














Porta Napoli













































레체 수호성인 Sant'Oronzo












색다른 형식의 교회


























Anfiteatro Romano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유물


























Il Teatro Romano








































올리브 나무

































































































































San Giovanni Battista 교회









































"Vendesi - 팝니다" 푯말이 걸려있던 집












Santa Cate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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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레체,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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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컬릿 버터 크림은 제과점에서 케이크나 디저트 등의 장식이나 소(가운데에 채워 넣는 것)로 많이 쓰인다.
부드러운 버터, 계란노른자, 설탕, 중탕한 쵸컬릿 등을 넣은 생크림의 일종.








재료 : 버터 250 gr / 쵸컬릿250 gr / 계란 노른자 3개 / 체에 밭친 고운 설탕 150 gr



■ Preparazione





cremaburro_ciocc_1_ric.jpg


1. 초컬릿을 중탕해서 덩어리 없는 크림상태가 될때까지 녹여 놓는다.
2. 버터를 상온에 최소한 30분간 놓아두어 무르게 만든다.

3. 적당한 용기에 녹인 버터와 체에 밭친 고운 설탕 1/2 을 넣어 거품기로 균일하고 매끈한 크림 상태가 될때까지 잘 섞는다.
4. 또다른 용기에 설탕 나머지와 계란 노른자를 넣는다 



 

cremaburro_ciocc_2_ric.jpg



1. 이것 또한 거품기로 색이 밝아지고 균일하게 될때까지 섞어준다
2. 아까 만들어 놓았던 버터크림과 합쳐서 두 재료가 잘 섞여 매끈한 크림상태가 될 때까지 거품기로 젓는다.





cremaburro_ciocc_3_ric.jpg


중탕해놓은 쵸컬릿을 조금씩 조금씩 부으면서 거품기로 잘 섞는다.



■ 요리팁


만들어진 쵸컬릿 크림은 온도가 높은 곳을 피해 냉장보관 해야 한다.
계란 노른자는 기호에 따라 넣지 않아도 상관없으며(녹인 쵸컬릿과 버터 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로운 맛을 낸다)
쵸컬릿의 농도도 기호에 따라 조절한다.








출처> Sonia Peronaci 의 블로그 Giallo Zaff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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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Sonia,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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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Andrea di Michele Cioni (Firenze, 1437 – Venezia, 1488) 는 조각가이자 화가, 보석세공가였다.
특히 로렌조 메디치의 휘하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했으며 그의 공방을 거쳐간 제자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뻬루지노, 길란다이오 등이 있다.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1400년대 피렌체 예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베로키오 덕분에 전 이탈리아에서 피렌체 회화, 조각, 보석세공품,
장식 등의 주문이 쇄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기술적으로 숙련되고 섬세했는데(오랜시간 보석세공가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선의 사용이나 인물의 약동적인 심리 표현에
대한 연구 등에서 많이 비슷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품들의 진정한 가치와 도달할수 없음에 대해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Andrea del Verrocchio 공방작품,
성모자, 1470 ca , Metropolitan Museum of Art , New York










Andrea del Verrocchio 와 Leonardo da Vinci, 1475
그리스도의 세례, Firenze, Uffizi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으로 추정되는 부분











Madonna with Sts John the Baptist and Donatus
1475-83
Wood, 189 x 191 cm
Duomo, Pistoia











Christ and Doubting Thomas
1476-83
Bronze, height: 230 cm
Orsanmichele, Florence











Putto with Dolphin
c. 1470
Bronze, height: 125 cm
Palazzo Vecchio, Florence











Portrait of a Woman
1475-80
Marble, height: 61 cm
Museo Nazionale del Bargello, Florence












Equestrian Statue of Colleoni
1480s
Gilded bronze, height: 395 cm (without base)
Campo di Santi Giovanni e Paolo, Venice





텍스트 출처> 위키백과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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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io Abbado (1933. 6. 26 Milano)










밀라노 쥬세페 베르디 국립음악원 바이얼린 교수인 아버지 미켈란젤로 아바도와

피아니스트이자 동화작가이던 어머니 마리아 카멜라 사바뇨네 사이에서 태어난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형제들도 모두 음악가이거나 건축가이다.

1955년 국립음악원에서 작곡과 피아노, 지휘를 전공, 졸업한 후

피아노는 Friedrich Gulda 에게, 지휘는 Antonino Votto에게 사사받는다.

비엔나에서 장학금을 받고 Hans Swarowsky의 지휘자 전문 코스를 밟은 아바도는

1958년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쿠세비츠키 Koussevitzky 콩쿨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뉴욕 필하모니를 지휘하면서 미국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 1958   Tanglewodd (USA) 의 Koussevitsky 콩쿨 우승.
  • 1960   밀라노 스칼라 극장 데뷔
  • 1963   뉴욕 필하모니의 Mitropoulos 상 수상
  • 1968   런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데뷔
  • 1968-1986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 1971   빈 필하모니 수석지휘자
  • 1979-1987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 1986-1991 빈 Staatsoper 음악감독
  • 1989-2002 베를린 필하모니 상임 지휘자
  • 2002-2003 Chamber Orchestra of Europe, Mahler Chamber Orchestra, Lucerne Festival Orchestra









Sinfonie Gustav Mahler , 4. Mov. (first part )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1987











Bruckner 9  D Minor Symphony,
Berlin Philharmonic, 1997




 





Beethoven Symphony No. 5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in 2001











Egmont overture, L.v. Beethoven op.84
Berliner Philharmoniker, in 2002










RICHARD STRAUSS GALA-92. DER ROSENKAVALIER. FINALE (part 1)

BERLINER PHILHARMONIKER

Kathleen Battle
Renee Fleming
Frederica von Stade
Andreas Schmidt










RICHARD STRAUSS GALA-92. DER ROSENKAVALIER. FINALE (part 2)











MAHLER Symphony No.6 - Allegro

Lucerne Festival Orchestra,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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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전통 디저트라고 하지만 바바babà 를 처음 만든 사람은 Stanislas Leczynski  라는 폴란드 왕이었다.
미식가이던 이 왕은 폴란드 전통 디저트인 kugelhupf 를 너무 건조하다는 이유로 싫어했는데,
바바의 전설은 모든 디저트에 싫증을 느낀 왕이 우연히 테이블 끄트머리에 놓여있던 럼酒를 보게 되면서 탄생한다.
럼주를 kugelhupf 에 들어붓는 순간 예기치 못한 향기가 진동했고,  맛을 본 왕은 홀딱 반해서
항상 즐겨읽던 천일야화의 알리바바 이름를 따서 새로운 케이크에 '바바'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바바의 풍미는 순식간에 프랑스 파리를 정복하고, 나폴리 귀족들에게까지 사랑받게 되었다.

- Sonia











반죽 재료 : 버터
125 gr / 밀가루 250 g / 우유 50 ml / 맥주효모 20 g / 소금 5 gr / 계란 4개  / 설탕 30 gr
럼소스 재료 : 물 500ml / 럼酒 작은잔 1잔 / 설탕 500 gr






■ Preparazione




Baba al rhum



1. 맥주효모를 설탕 작은 2 스푼과 함께 적당한 용기에 넣고 미지근하게 데운 우유를 붓는다.
2. 작은 스푼으로 잘 섞어준 뒤 표면으로 거품이 피어오를 때까지 몇분간 상온에 놓아둔다.
3. 빵반죽기에 밀가루와 계란을 넣고, 만들어 놓았던 발효유를 넣는다.
4. 반죽이 덩어리지지 않고 매끈하게 될 때까지 천천히 잘 섞여야 한다.
 
 


Baba al rhum



1. 상온에 놓아 둔 버터를 나머지 설탕과 섞는다
2. 이 버터를 반죽에 조금씩 조금씩 첨가한다. 반죽기의 속도를 조금 빠르게 한다.




Baba al rhum



1. 반죽이 부드럽고 묽게 잘 섞이면 적당한 용기에 버터를 두르고 붓는다.
2. 랩을 덮어 약간 따뜻한 장소에 1시간 30분 가량 놓아둔다.
3. 버터를 발라 두었던 케잌 굽는 용기에 담는다.




Baba al rhum



1. 용기의 반만 반죽을 채우고 20분간 더 발효시킨다.
2.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15분간 굽는다.
3. 다 익으면 오븐에서 꺼내어 식힌다.




Baba al rhum
]


1. 케익이 구워지는 동안 럼시럽을 만들어야한다. 물에 설탕 500g을 넣고 2-3 분간 펄펄 끓인다.
2. 끓는물에 럼주를 취향에 따라 적당량을 붓는다.
3. 시럽이 완성되면 바바를 시럽에 담그어 시럽을 충분히 흡수하게 한다.
4. 살구잼 2스푼과 물 1 큰스푼을 작은 냄비에 넣고 잘 섞일때까지 미지근한 불에 녹인다.
5. 이 잼을 바바에 붓으로 발라준다.




■ 요리팁


◇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바에 생크림과 딸기, 체리 등 신선한 과일로 장식하는 것을 추천한다.

◇  럼주의 향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구잼을 발라 그릇에 담아놓은 바바 위에 럼을 한번 더 부어준다.

◇  알콜을 싫어하거나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을 때는 럼주 대신 레몬향을 물에 끓여 적신다.



 
P.s.: 바바는 귀족도 손으로 먹어요!










출처> Sonia Peronaci 의 블로그 Giallo Zaff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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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신하게 구워진 요구르트 플럼케잌은 커피 한잔과 함께 아침식사 용으로 좋으며 아이들의 간식,
향기로운 차 한잔과 함께 오후의 여유를 즐기기에 좋은 케이크이다.
영국에서 유래한 플럼케이크는 앵글로색슨족의 전형적인 cake 라고 할 수 있다.










재료 : 버터40 gr / 밀가루 280 gr / 베이킹파우더 1봉지 / 레몬 1개 껍질 간 것 / 옥수수유80 gr  / 소금 반 티스푼 / 계란 2개 / 바닐라향
         플레인 요구르트 400 ml / 설탕 130 gr






■ Preparazione




plumcake_1_ric.jpg




1. 커다란 용기에 설탕, 요구르트, 계란, 기름, 녹인 버터를 넣고 거품기로 섞는다

2. 섞는 도중에 바닐라향을 첨가하고, 다시 거품기로 잘 섞어준다






plumcake_2_ric.jpg




1. 체에 밭친 밀가루와 소금을 넣어 젓는다.

2. 마지막으로 베이킹 파우더를 넣고 반죽이 충분히 찰지게 될 때까지 잘 섞는다.

3. 오븐을 최대한 미지근한 온도로 켜놓고 반죽을 넣어 1시간 반쯤 발효시킨다.

4. 시간이 되면 반죽이 더욱 찰지고 된 크림상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plumcake_3_ric.jpg




1. 플럼케잌을 구울 틀에 기름칠을 하고 밀가루를 뿌린다
2. 200도로 가열해 놓은 오븐에 약 18/20분 구워낸다.





■ 요리팁




커다란 빵틀에 한꺼번에 구울 경우에는

온도는 200도로 같지만, 가열시간을 약 40분 가량으로 늘여 주어야 합니다.








출처> Sonia Peronaci 의 블로그 Giallo Zaff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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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Sonia, 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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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Dio comanda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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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 will com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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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Dio comanda Original Soundtrack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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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nza 124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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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b Night Sessions Vol. 2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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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도비 dobby




이딸랴 이치프 본교 생활 꼴랑 일주일

토욜과 일욜에는 수업이 없다.


정신없이 그렇게 첫주가 가고, 마치 한달도 넘게 날들이 간것만 같다.


벌써 아내가 그립고 딸아이가 아른거린다.


일 때문에 장기 출장을 갔을 때는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많이 틀리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낯설다.



나이들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는 것은 못할 짓이다.














핸드폰을 장만하러 아스티에 나가는 김에 또리노로 나들이를 하기로 한다.


꼬스띨리올레가 작은 마을인지라 기차역이 있는 아스티까지 나가는 버스는 하루 여섯번 밖에 없다.

돌아오는 버스도 6시 30분이 막차라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
















아스티까지 요금은 1유로 20첸토

이딸랴 작은 마을의 버스는 모두 운전기사가 요금을 받는다.

요금 받고, 거스름 돈 챙겨주고, 버스표에 구멍 뚫어주고...
















버스는 멀쩡하다.  아스티의 버스 종점

부랴부랴 여덟명의 심카드를 신청하고 폰은 또리노에 가서 가장 싼 놈으로 사기로 한다.























이딸랴에서 여행할 때는 기차가 제일 편하고 저렴하다.

갈아타는 것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철도망이 작은 마을들까지 연결되어있다.


기차표는 창구에서 직접 구입해도 되지만 대부분의 역에 있는 자동판매기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

이딸랴말이 유창하면 할말 없구...














우리가 기차표를 사는 동안 본교과정이 끝난 일본 마스터 코스 학생 몇이 스테이지로 가기위해 역으로 왔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두달 후면 우리도 저렇게 가방을 끌고 이 역에서 뿔뿔히 흩어져야 한다.


스테이지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 달랑들고 이딸랴의 어느 낯선 도시로 떠나야 한다.

낯선 도시, 낯선 리스또란떼, 낯선 주방으로...





























쨋든 오늘은 또리노로...

또리노는 이딸랴에서 제일 산업이 발달한 피에몬떼주의 주도다.

이딸랴 자동차 디자인의 메카이기도 하고 피아트 자동차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2006년 동계올림픽으로 더 익숙하다.















이딸랴 기차표, 넓직하니 크다.  특이한 것은 유효기간이 두달이다.

오늘 끊어놓고 두달 뒤에 기차를 타도 된다.



그래서 가끔 아니 외국인 특히 동양인은 검표를 한다.

꼭 기차역에서 개찰을 하고 타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개찰 안한 기차표를 들고 기차를 타면 벌금이 요금의 30배다.



그런데 가끔 서두르다 보면 개찰을 잊고 타게 된다.  그럴 땐 이딸랴말 모르는 걸로 밀고 나가야 된다.

쭈욱~  굳건하게~  그럼 신경질내고 머라머라 하고 걍 간다.














또리노역

로마의 떼르미니역이나 밀라노의 중앙역 만큼이나 크다.

























역전 앞...명수없닷!!!












이딸랴에서 낯선 도시에 가면...

- 도베 두오모? (두오모 어딧냐?)  하면 된다.


모든 도시에 두오모가 있고 그 주변이 그 도시의 번화가이다.














역 주변 길가에는 헌책들을 늘어놓고 팔고있다.

헌책이라고는 하지만 상태가 좋은 책들도 꽤 많다.  값도 너무 싸고...


화집이나 사진집 같은 책들은 5유로 미만으로 살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책들을...


사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된다.

저 무거운 책들을 가지고 스테이지를 떠돌 수 없으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비는 한국음식이 그립다.


삼겹살이 고프고 쇠주가 아른거린다.  얼큰한 국물도...



우기고 우겨서 점심은 중식당을 찾기로 했다.

한식당은 로마와 밀라노에 밖에 없다.  대체재로는 그나마 중식당이...













이딸랴에서 국물있는 음식은 먹기가 어렵다.

중식당에 혹 쨤뽕 비슷한 것이 있으려나 했지만, 중식도 이딸랴 현지화 해서 그런 접시 없다.


볶음밥도 감사하다.

중식당이 좋은 것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하다.  볶음밥류는 3유로 정도면 먹을 수 있다.  파스타 보다 훨씬 싸다.

대부분의 기차역이 있는 도시에는 중식당도 있다.   화교...ㄷㄷㄷㄷ












































깨끗하게 먹어줬다.


밥먹고 나오는 길에 길에서 만난 맹랑한 놈...^^























길에서 미모의 짝을 보더니 주인이 암 끌어도 나 몰라라닷!!!  ㅋㅋ


이딸랴에 있는 동안 작은 견종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  대부분 한 덩치 하는 놈들을 키운다.  뭔 이유인지?














노키아폰 30유로에 구입했다.  그나마 제일 저렴한 폰이다.

이제 막차시간에 맞추어 아스티로 돌아가야 하고 짜투리 시간동안 또리노를 둘러본다.
























이딸랴 도시에 공통적으로 꼭 있는 것이 도비 생각에는 세가지가 있다.

두오모, 피아짜(광장) 그리고 동상


또리노도 다르지 않다.















피아트의 도시 답게 골목에는 오래된 피아트 500 이 앙증맞게 주차되어 있다.






















































그렇게 기차시간에 맞추어 역으로 오기는 했는데...














그만 기차를 놓쳤다.

비나리오(플랫홈)가 바뀌었단다.  이딸랴 답다.


사실 기차 여행이 좋기는 하지만 연착하거나 비나리오가 바뀌는 경우가 꽤 많다.

출발 전에 안내방송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헐레벌떡 뛰어 기차를 타고싶지 않으면...













두시간도 넘게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아스티에서 막차는 놓치고...

결국 30유 내고 택시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출처> sl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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